트럼프의 ‘천박한 거래’ 부메랑 됐다...이란 핵압박 카드 잃은 美

이란 핵압박 트럼프의 치명적 실수
2018년 ‘JCPOA 탈퇴’ 딜레마 빠져

이란 최대압박하려면 ‘스냅백’ 필요
JCPOA 탈퇴로 스냅백 능력 상실해

독일 등 유럽 우군 독려도 만만찮아
우크라전 ‘유럽패싱’으로 신뢰 상실

2015년 이란 핵 협상(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논의 당시 당사국 외교장관들 모습. <서잔=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란과 핵협상 논의를 독촉하며 핵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저급한 거래적 외교 행태거 이란에 뜻밖의 ‘대응력’을 선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미국과 멀어지고 있는 유럽 동맹국들이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밀착 행보에 허를 찔린 유럽연합(EU) 국가들은 236조원의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대대적인 자강 행보에 착수했다.


프랑스의 경우 그간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온 독일 등을 상대로 자국의 핵무기 우산을 공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유럽 안보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백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미국의 유럽 우방들이 기민하게 ‘플랜B’를 준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천박한 거래주의 외교 노선을 목도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영국은 2015년 이란과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참여한 당사국들이다.


이 합의는 당시 이란과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그리고 독일과 유럽연합(EU)이 참여했다.


합의의 핵심은 일명 ‘스냅백(snapback)’이다.


이란이 핵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핵 시설 감축 등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면 합의 이전에 결의된 대이란 경제 제재 조치(총 7개)를 부활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인 2018년 이 합의에서 일방 탈퇴하면서 지난 7년 간 이 합의는 산소마스크를 쓴 상태로 존속됐고, 지난 바이든 행정부에서 합의 복원(미국의 복귀)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으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현지 조사 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국제사회 간 마찰 등으로 불발했다.


자신의 불장난으로 JCPOA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프랑스와 독일, 영국, EU를 상대로 스냅백 발동을 일으켜야 하는 게 현 트럼프 대통령이 봉착한 지정학 딜레마다.


문제는 최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패싱‘에 반감이 가득한 유럽 국가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프랑스, 독일, 영국, EU집행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곱게 따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외려 이들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JCPOA 탈퇴 충격 속에서도 후속 탈퇴를 선언하지 않고 합의체를 유지해오며 올해 10월까지 새로운 합의로 갱신을 모색하는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이란이 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일견 타당하더라도 7년 전 JCPOA를 탈퇴한 그가 스냅백 발동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자 이스라엘과 밀착한 미치광이 협상 전략으로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EU집행위가 이란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묶어두고 있는 ‘JCPOA 효과’를 무시하고 스냅백 발동으로 JCPOA를 공중분해시키는 시나리오야말로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이 가장 선호하는 밑그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거래 상대방의 손에 마땅한 카드가 없는 협상 테이블을 만드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더티딜 전략이다.


유럽의 우군들이 자신의 구상을 따를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돌이켜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노골적인 거래·고립주의 외교 노선으로 말미암아 이란을 압박할 두 개의 멋진 카드(JCPOA 합의체·유럽 우군)를 버린 셈이 됐다.


역으로 이란 입장에서는 지난 10년 간 보호막 역할을 해온 유럽 중심의 JCPOA 합의체를 유지·갱신하는 데 힘을 모으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는 최대한 직접 협상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 스냅백 조항으로 발동할 경제 제재를 피하며 핵무기 잠재력을 존속시키는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관련해서 이란 지정학 전문가인 발라 칼레지는 지난 9일 일본 닛케이아시아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이 가장 염려하는 핵협상 시나리오로 스냅백 발동 가능성을 주시하며 JCPOA 당사국들과 협상에 중심을 두고 미국과는 간접협상 방식으로 핵프로그램 논의를 전개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난달 공개된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 보유량은 2월 8일 기준으로 274.8㎏에 이른다.

이는 2024년 11월 보고서에 실린 182.3㎏에서 50% 상승한 것으로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 유력해지자 보유량이 급증한 것이다.


이란이 생산하는 60% 농축우라늄은 대량으로 사용하면 그 자체로도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준무기급’이며, 며칠간 추가 농축 과정을 거치면 쉽고 빠르게 농축도가 약 90% 이상인 ‘무기급’(weapons-grade) 우라늄도 만들어낼 수 있다.


IAEA는 보고서에서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축적이 상당히 증가한 점은 심각하게 우려스럽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동맹들을 경악시켰던 지난달 트럼프-젤렌스키 백악관 회동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상대로 “당신은 손에 쥔 카드가 없다”며 순종을 압박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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