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반도체·자동차 관세, 철강·알루미늄 관세 등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각국은 실제 관세 부과가 본격화될 4월 1일까지 협상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타깃이 됐던 자동차·철강이 이번에도 관세 사정권에 들어간 만큼 당시 한국 정부의 협상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고 '반면교사' 삼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철강 쿼터제 합의 등 미국과 굵직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낸 경험이 있다.
당시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유명희,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대상 범위를 최대한 좁히면서 경쟁국의 협상 과정을 보고 움직이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는 관세전쟁 전선이 넓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한국으로선 대미 무역흑자가 당시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이 부담이다.
주미대사관 상무관으로 협상에 참가했던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은 "트럼프 1기에서는 한미 FTA가 타깃이 됐다면 지금은 모든 국가에 부과할 상호관세와 철강·자동차 등 주요 업종별 관세가 중심이 돼 있다"며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경쟁국들은 서로 나은 조건을 제시해 딜 메이킹을 시도할 것이고 우리는 트럼프 정부와 경쟁국 모두를 염두에 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상교섭실장으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행했던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협상의 타이밍을 잡기가 까다로운 상황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유 교수는 "앞서 협상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지만, 또 너무 늦어지면 경쟁국보다 불리한 경쟁 여건에서 협상해야 된다"며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선에서 협상 개시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1기 때보다 유리한 협상 여건을 한국 협상단이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 캠페인부터 한미 FTA를 '끔찍한 협정'이라고 몰아세웠던 트럼프 1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상대적으로 한국을 직접 겨냥한 압박이 덜하다는 평가다.
유 교수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협상을 치고 나갈 필요가 없다"며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우리가 크게 조급할 것이 없기 때문에 협상이 가능한 대상을 정리하고 디테일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미 FTA로 주요 공산품의 관세가 0%라는 점도 우리의 협상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조선업과 방위 산업, 원자력 등 트럼프 행정부가 주목하는 유망 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고 최근 우리나라가 미국의 최대 투자 국가로 부상한 점 역시 협상에 유리한 부분이다.
유 교수는 "FTA로 상호 간 관세가 0%이고 앞으로도 한국의 대미 투자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협상에 매우 유리하다"며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의 필수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하고 미국 측에 한미 협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 선임위원은 "트럼프 2기의 유망 산업은 조선과 군수, 원자력, 바이오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분야에 한국이 투자하면서 미국의 규제 완화와 지원을 얻어내는 '윈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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