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지난 20년간 ‘대국’ 재부상 추진하며
주변국에 군사·외교 영향력 확장해왔지만
우크라이나에 자원 과도하게 투입하면서
입김 감소...“시리아 실패로 ‘엉망진창’ 돼”

짓밟히는 알아사드 초상화. AFP 연합뉴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붕괴는 러시아의 외교적 위상 약화라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9일(현지시간) 전했다.


시리아 반궁이 수도 다마스쿠스에 진입한 지 몇 시간 만에 러시아 국영 TV는 애써 중동의 러시아 최대 동맹인 아사드 정권 붕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군사 분야 영향력 있는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인 보이에니 오스베도미텔은 “이번 사건은 지난 9년간 우리가 열심히 싸워온 중동에서의 군사력 상실과 엄청난 지정학적 패배”라고 올렸다.


모스크바에 있는 전략기술분석센터 싱크탱크의 책임자인 루슬란 푸코프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리아에서 크렘린궁의 군사와 전략 역량이 ‘약화’돼 결국 아사드 정권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러시아가 대국을 지향하며 실시한 해외 개입주의 정책의 큰 한계를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또 “모스크바는 구소련 밖에서 무력으로 효과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 자원, 영향력,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라며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힘과 역량에 대해 허세를 부릴 수는 있지만, 자신의 허세를 믿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청한 러시아의 한 기자는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시리아에 존재해 왔는데, 푸틴은 불과 2주 만에 모든 것을 망쳤다”라며 “무엇을 위해서였나?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작은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서?”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언론과 싱크탱크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언급을 하는 것을 이례적이라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7월 모스크바에서 악수하는 푸틴(오른쪽)과 알아사드.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의 대부분 자원이 투입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국경 너머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는 큰 위기를 맞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수십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면서 러시아는 시리아에 추가 병력을 투입할 수 없었다.

중동에 있던 바그너 그룹 용병도 우크라이나 동부에 재배치해 러시아가 아사드를 지원할 수 있는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유럽정책분석센터의 벤 두보우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 러시아의 신뢰도와 힘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은 재임 초기 20년의 대부분을 서방의 패권을 종식하고 다극적인 세계 질서를 가져올 세계 역사 국가로서의 러시아 정체성을 재건하는 데 보냈다”라며 “그 비전은 이제 엉망진창이 됐다”라고 진단했다.


푸틴 대통령이 외부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성공적이었다고 더 타임스는 분석했다.

지난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영토 점령,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22년 초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한 군대 파견 성공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

2015년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군사 행동을 시작한 것도 러시아가 서방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글로벌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로 묘사된 바 있다.

시리아는 러시아가 서방에 도전하는 동시에, 새로운 무기를 시험할 수 있는 중요한 나라였다.


그러나 3년여 전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이후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확장 시도는 연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주요 도시는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 붕괴 직전에는 몰도바에서 유럽연합(EU) 가입 시도를 무산시키고 친서방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데 실패했다.


지난 6일에는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무효로 했다.

러시아는 루마니아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판해 온 친러시아 성향의 무소속 극우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를 위해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에 따라 8일 제오르제스쿠 후보와 중도 우파 야당 후보가 맞붙을 예정이었던 대선 결선 투표는 취소됐다.


조지아에서는 집권당이 러시아와 공모해 EU 가입 협상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자 거의 2주 동안 매일 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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