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계엄 후폭풍 ◆
글로벌 외교안보 전문가와 석학 등이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가 분명 잘못됐다고 비판하면서도 한국의 극심한 정치 양극화를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한민국 정치 리더십이 이른바 '피크 아웃(정점을 찍고 하락)'할 위기에 처해 있지만 민주주의 작동이 확인됨에 따라 재도약 가능성은 남겼다고 전망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7일(현지시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포용적 제도를 착취적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등 포용적인 제도가 국가 발전의 핵심 요인이지만, 소수 집단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가 포용적 제도를 저해한다는 게 로빈슨 교수의 주요 연구 결과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포용적 제도의 핵심인 민주주의가 한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국가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고유의) 정치적 문제"라고 했다.
로빈슨 교수는 이날 한국 언론에 "포용적 제도를 착취적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다.
전혀 놀랍지 않다"며 "역사적으로도 포용적 제도를 훼손한 경우는 아주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빈슨 교수는 비상계엄 철회 과정에 대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켜 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굉장히 고무적이었다"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재확인"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최근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타협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도 사태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계엄령은 절대 옳은 조처가 아니었지만 왜 윤 대통령이 자신의 통치 능력이 심각하게 방해를 받는다고 극도의 좌절감을 느꼈을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서 "계엄령 선포 결정은 끔찍했다"며 "윤 대통령이 이 위기를 촉발했고 스스로 정치적 무덤을 팠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불확실성에 빠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보도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윤 대통령의 행동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장 부적절한 시점에 한국에 장기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그는 한국에서 가장 비(非)민주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연방하원 15선의 중진인 브래드 셔먼 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은 지난 6일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한국 국민과 국회의원들을 칭찬하고 싶다"며 "그들은 터무니없는 계엄령 선포에 직면했을 때 전 세계에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셔먼 의원은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 훼손을 시도했지만 한국 국민과 국회의원이 이를 막았다는 점에서 희망을 봤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정치와 사회에 부정적 충격은 상당 기간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무라 미키 고베대 교수는 "한국 보수 세력의 재건도 앞으로 쉽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한국의 민주적 절차가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당국자는 이날 한국 언론에 "미국은 오늘 국회의 결과와 국회의 추가 조처에 대한 논의에 주목했다"며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헌법에 따라 온전하고 제대로 작동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모든 상황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뉴욕 윤원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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