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인내심 실험”…물가에 민심이 들끓는 까닭 [노영우 칼럼]

한국 물가상승률 위험수위
국민 인내심 시험하는 단계
눌러놨던 가격 총선후 꿈틀
전면적 물가관리 필요할 때

인도 총선은 ‘양파 선거’로 불린다.

다른 정책보다 인도인이 애용하는 식재료인 양파 값을 잡지 못하는 정권은 선거를 이기기 어렵다.

4월부터 시작해 선거기간 6주, 유권자 10억여 명이 참여하는 지구촌 최대 민주주의 시험장에서도 양파 값은 민심의 바로미터다.

3연임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양파 값을 잡기위해 ‘양파 수출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대다수 국민이 자동차를 갖고 있는 미국은 휘발유 값이 오르면 집권당은 궁지에 몰린다.

어디나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물가로 상징된다.

우리나라도 물가 때문에 민심이 들끓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코로나19 효과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거리두기와 격리가 일상화됐다.

장보기와 외식은 중단됐고 소비도 크게 줄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한동안 물가 변화에 둔감했다.

그러다 2023년 5월 코로나19 종식을 의미하는 ‘엔데믹’ 선언 이후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비 지출이 늘었고 물가를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실제 확인한 물가는 충격적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3월까지 약 4년 간 458개 품목의 가격을 가중 평균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4.3%다.

평균적으로 1만 원짜리가 1만1430원이 됐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21.5%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전체적인 물가는 선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꺼풀 벗겨보면 지표에 가려진 실상이 나온다.

이 기간 중 귤 값은 222%올랐다.

1만 원짜리 귤 한 상자가 3만2200원이 됐다.

참외는 180.3%, 복숭아는 148.6% 가격이 올랐다.

사과 값도 102.1% 올라 값이 두 배가 됐다.


식탁에 흔히 올라오는 풋고추 값은 116%, 감자와 파 값은 각각 95.8%와 78.2% 상승했다.

양파 부추 깻잎 오이 등도 60-90% 올랐다.

물가가 50%이상 오른 품목 26개중 25개가 시장에서 자주 장바구니에 담는 먹거리다.

인도는 양파 하나에도 정권이 휘청 이는데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수십 개 품목의 가격이 급등하니 민심이 잠잠할 리 없다.


최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충우기자]

물론 가격이 대폭 떨어진 것도 있다.

병원 검사료는 42.5% 떨어졌고 유치원 납입금(37.8%), 승용차 임차료(29.6%) 가격도 급락했다.

하락한 물가와 상승한 물가를 합해 평균을 내면 14.3%가 나온다.

하지만 물가가 떨어진 품목은 다소 생경하지만 물가가 급등한 물건은 우리가 시장에서 매일 접하는 것들이다.

지표와 체감 물가 간 격차가 커지는 전형적인 ‘평균의 함정’이다.


미국은 전체 물가상승률은 우리보다 높았지만 장바구니 물가를 상징하는 식음료품의 물가상승률은 25.5%로 우리나라(29.4%)보다 낮았다.

물가 통계 전문가는 실제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조사에 들어가는 품목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가격을 많이 올리지 못하지만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품목의 값은 훨씬 더 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해 정부가 억눌렀던 각종 가격이 선거후 곳곳에서 오르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유가 급등을 가져온다.

이 와중에 정부와 한국은행은 돈을 더 풀었다.

2023년 2%대였던 총통화(M2)증가율은 올 들어 3%대로 올랐다.

현재 우리나라 물가는 국민들의 인내심을 실험하고 있다.

체감 물가가 더 오르면 민심은 폭발할 것이다.

이쯤 되면 풀린 돈을 관리하는 거시 정책은 물론 작황과 생산 등 먹거리 공급까지 감안한 전면적인 물가관리가 필요하다.

물가 안정에 정권의 성패가 달렸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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