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이 2% 넘게 급락했지만 원화값은 달러 대비 되레 반등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잇따라 구두 개입에 나선 데다 외환당국이 원·달러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 매도 개입을 통해 원화 약세 심리를 되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역외 투자자들의 최근 원화 매도·달러 매수가 투기적 달러 매수가 아닌 손절매 성격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직전 원화 급락 시기였던 2022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유가, 물가, 수출 등 원화를 둘러싼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현저히 좋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1일 글로벌 외환중개사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뉴욕 금융시장 마감 무렵 NDF 시장에서 원화값은 달러당 1375원(현물환 환산 기준)에 거래됐다.

이는 19일 서울 외환시장 종가인 달러당 1382.2원 대비 7원 정도 오른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재보복 소식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18일 달러당 1372.9원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통상 뉴욕 NDF 종가는 서울 외환시장 다음 거래일 개장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된다.

외환시장에서는 정부가 NDF 시장에서 달러 매도 개입을 통해 원화 약세를 방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가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주들의 급락으로 하락한 만큼 반도체가 주력인 한국 주식시장 역시 22일 하락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증시 불안=원화 약세'라는 공식을 감안하면 이날 NDF 종가는 1390원대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외환당국은 최근 원화값 약세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다.

최 장관이 미·일 재무장관과 공동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데 이어 19일에는 이 총재가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많은 불확실성이 있지만 우리처럼 석유 소비가 많은 나라는 중동 향방에 따라 상황이 불확실하다"며 "확전이 안 된다면 환율도 다시 안정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미·일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이 원화 절하 속도가 과도하다고 언급한 덕분에 우리 외환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숨통도 한결 트였다.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미국 재무부는 개입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무역 정책에서 각종 불이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 재무부가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을 사실상 용인한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외환당국 수장들의 구두 개입과 '일시적 원화 약세'라는 설명이 펀더멘털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2년 원화값이 연초 달러당 1191.8원에서 같은 해 9월 달러당 1439.9원까지 수직 낙하했던 때보다는 주변 여건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원화값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인 국제유가, 국내 물가, 수출 등 세 가지가 2022년 대비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 숫자로 증명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훌쩍 웃돌았다.

그랬던 WTI 가격은 올해 이스라엘발 불안이 심화됐음에도 배럴당 87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국내 물가 역시 마찬가지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022년 7월 6.3%에 달하며 고공 행진했지만 올해 3월에는 3.1%로 낮아졌다.

경상수지 역시 2022년 8월 41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고전했지만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호전되며 지난 2월 경상수지는 7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이후 월별 기준 최고치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역외에서도 한국 펀더멘털 호조과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 고조 등을 이유로 달러 매도·원화 매수 포지션을 쌓았다가 단기적 시장 불안으로 손절매를 위해 달러 매수에 나섰던 것"이라며 "거시지표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큰손'들은 원화 약세 베팅에 나설 움직임이 현재로선 없다시피 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추가 돌발 상황이 없는 한 원화값이 당분간 달러당 1350~1400원 선에서 박스권을 나타내다 하반기 들어 다시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강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역외선물환(NDF)
역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환 거래다.

만기 시점에 환전을 위해 달러와 계약 통화를 주고받을 필요 없이 차액만 달러로 결제하면 돼 개별 국가의 외국환거래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뉴욕시장 NDF 종가는 국내 외환시장 개장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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