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계 떠나는 ‘보수의 별’이 한국 탄핵정국에 던지는 울림 [★★글로벌]

밋 롬니 의원 4일 고별연설로 정계 은퇴
2020년 트럼프 탄핵 찬성 ‘공화당 1인’
“당파 우선하면 역사·양심의 질책 받아,
미래세대에 우린 어떤 각주가 될 것인가”
정치가 왜 중요한지 일깨운 보수의 거목

지난 3일 밤, 한국에서 벌어진 비상계엄 발동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확고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았습니다.


불법 계엄이 민주주의의 힘으로 무력화한 뒤 지금 세계의 눈은 한국에서 전개되는 대통령 탄핵 논의에 쏠려 있습니다.


여당은 대통령 탈당을 재요구하면서도 탄핵 만큼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 같은 목소리를 한국의 여당 대표가 내놓은 시각에 미국에서는 보수정치의 큰 별이 정계를 떠나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존경받아온 밋 롬니 상원의원입니다.


미국 보수정치의 거목인 밋 롬니 상원의원이 4일(현지시간) 연단에서 고별 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연설 동영상에는 “2012년 민주당 오바마를 찍었던 국민들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응원과 지지글이 달렸다.

<이미지=CSPAN 영상 캡처>

지난 수요일 고별 연설에서 초당적 정치를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그는 미국 정치사에서 두 개의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2012년 버락 오바마와 대선에서 깨끗한 패배 인정, 그리고 2020년 미국 정치의 탄핵 국면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자당 소속이었던 대통령에게 탄핵 찬성표를 던진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2012년 대선 당시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민주당의 정치 초보인 오바마 후보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다가 개표 과정에서 오바마 후보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미국에 위대한 도전의 순간이 왔다”라며 아낌없는 축하를 보냅니다.


이에 오바마 당선인은 “나와 롬니가 격렬히 싸운 것은 오로지 이 나라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화답하죠.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후보와 TV토론을 벌이고 있는 밋 롬니 후보. <이미지=CSPAN 영상 캡처>
현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품위 있는 대선 패자와 승자였습니다.


그의 두 번째 발자취는 그가 소신 있는 ‘아웃라이어’였다는 점입니다.


아웃라이어는 통계에서 평균치를 크게 벗어나는 데이터를 말합니다.

사회적 맥락으로는 보통의 생각을 넘어선 비범성을 가리킵니다.


그가 아웃라이어인 이유는 2020년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권력남용 혐의에 따른 탄핵안이 제출됐을 때 공화당 상원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죠.
권력자인 현직 대통령이 서슬 퍼런 눈으로 자당 의원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선택은 당밖에선 박수를, 하지만 당내에선 반역이라는 힐난을 일으켰죠.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아도 비슷한 운율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에 불복하고 이듬해 1월 의회 침탈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로 인해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 탄핵안이 다시 제출됐는데, 이때 극적인 반전이 나타납니다.

1년 전 밋 롬니 한 명이었던 소신파가 7명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공화당 소속 50명 중 7명에 불과해 여전히 소심한 이탈표임에도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역사상 가장 초당적인 탄핵안 투표’라고 평가했습니다.


1868년(앤드루 존슨), 1999년(빌 클린턴) 현직 대통령 탄핵 표결 땐 이들이 속한 민주당에서 단 한 장의 이탈표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신자라는 정치적 오명을 무릅쓰고 그가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트럼프에 대한 악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상원의원들이 헌법의 의무에 등을 돌린다면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며 양심의 가책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연설을 시작하며 헌법과 신앙을 얘기하다 10여초 간 가슴으로 우는 듯 말을 잇지 못합니다.


2020년 트럼프 탄핵소추안 표결 처리 당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던 밋 롬니 의원이 투표에 앞서 신상 발언을 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먹이고 있다.

당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롬니 의원만이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이듬해 탄핵소추안에서는 롬니와 같은 공화당 아웃라이어가 7명으로 늘었다.

비록 탄핵소추안은 부결됐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역사상 가장 초당파적인 탄핵투표”라고 평가했다.

<이미지=PBS 영상 캡처>

법은 우리 공화국 성공의 근간이며, 우리는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헌법은 최근 우리 의회에 탄핵이라는 수단을 마련했습니다.

탄핵 소추안에 적시된 혐의는 매우 심각합니다.

저는 상원의원 배심원으로서 공정한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선서했습니다.

저는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제 신앙은 저를 이루는 핵심입니다.

(울먹임)
국민은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우리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심판할 것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수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팀과 함께 하자(stand with the team)”고 요청했습니다.

그 생각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정의를 적용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 편견을 제쳐둬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파적 목적을 위해 제시된 증거를 무시하고 제가 했던 선서와 헌법이 제게 요구한다고 믿는 것들을 무시한다면, 두렵게도 이로 인해 저는 역사의 질책과 양심의 비난에 직면할 것입니다.


저는 제 한 표를 통해 아이들에게 조국이 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믿고 최선을 다해 제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재판의 기록을 보는 미래세대에 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많은 의원 중 하나일 뿐입니다.

미래세대는 제가 대통령의 잘못을 판단한 상원의원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역사의 기록에서 각주(footnote)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자유와 정의로 잉태된 이 나라에서 그 각주는 미래세대에 충분히 특별한 것입니다.


공화당의 유일한 아웃라이어였던 그의 찬성표는 실제 트럼프 탄핵을 만들지 못한 작은 각주였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각주는 말합니다.

정치란 헌법과 본인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라고.
탄핵소추안을 제출한 야당과 이를 막겠다는 여당 모두 밋 롬니의 2020년 탄핵소추안 연설을 필독하기를 권합니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300개의 각주가 헌법과 양심에 따라 어떤 결정을 만들어낼지 한국의 미래세대는 기록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3일 경찰력에 의해 봉쇄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한주형 기자>
(밋 롬니 2020년 연설 전문 ▶ www.nytimes.com/2020/02/05/us/politics/mitt-romney-impeachment-speech-transcrip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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