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한미 외교수장 간 통화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국의 민주적 절차가 승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국회 만장일치로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아직 남은 '민주적 절차'에 주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미 정부는 비상계엄을 '심한 오판'이라고 표현한 데 이어 5일(현지시간) "(비상계엄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언급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가운데 당초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려 했던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한국 방문을 전격 보류했다.
국무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블링컨 장관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면서 한국의 계엄령 선포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으며,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계엄령이 해제된 것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이 기간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에 대한 확신을 전달했다"며 "그는 한국의 민주적 절차가 승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이 언급한 '민주적 절차' 개념에는 탄핵 등 향후 수습 절차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블링컨 장관이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면서 미국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맹에 대한 어떠한 도발이나 위협에도 함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성명은 전했다.
국무부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 비상계엄을 두고 '정치적 분쟁(political dispute)'이라고 정의한 이후 줄곧 비상계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발언에 담아왔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4일 윤 대통령에 대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을 했다고 언급하고 계엄 선포와 관련해 "불법적인(illegitimate)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진행된 국무부 브리핑에서 베단 파텔 부대변인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계엄 선포와 관련한) 상황 전개, 이를 둘러싼 결정에 대해 의문이 있고, 그 의문들에 대해 답변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두 차례 반복했다.
또한 그는 "계엄령 발동과 그러한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확실히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 표결에 따라 계엄령이 철회된 것은 불확실한 시기에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 관계, 이 동맹, 우리가 한국과 맺고 있는 파트너십은 태평양 양쪽(한미)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한다"며 "이것은 공화당, 민주당 등 여러 다른 행정부를 초월해온 동맹이자 파트너십이며 한국에서도 계속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퇴 등 여파가 이어지면서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초 한국과 일본을 연이어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오스틴 장관은 일본만 방문한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스틴 장관이 7일 캘리포니아주에서 개최되는 레이건 국방포럼에 참석한 뒤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마지막 한일 순방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한미, 미·일 동맹 강화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성과를 점검하고,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를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오스틴 장관이 가까운 시기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국방부 장관 사임 등과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4~5일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이 계엄 사태 여파 속에서 무기한 연기됐다.
라이더 대변인은 향후 NCG 일정에 대한 질문에 "아직 업데이트로 제공할 게 없다"면서 "한국에서의 이벤트를 고려할 때 이것(일정 연기)은 신중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국 계엄 사태와 관련한 주한 미군 태세 변화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군 태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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