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산타랠리'를 기대하던 주식 투자자들은 또다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할 판이다.

미국 주식시장이 잘 달궈진 '아궁이'처럼 뜨겁지만 한국 시장은 경기 불황에 정치 상황까지 겹쳐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미국 시장을 뜨겁게 하는 장작은 소비다.

민간소비가 연말에도 여전히 상승세인 데다 장작들이 타오르도록 부추기는 '불쏘시개'와 같은 기업들도 눈에 띈다.

월스트리트에선 이런 불쏘시개 같은 기업으로 아마존·월마트·마스터카드·비자·어펌홀딩스(어펌)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국내 소비시장은 경기 침체와 계엄령을 둘러싼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차갑게 식어 대조가 된다.

이마트와 신세계 등 소비 관련 주식 가격이 바닥에서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다.

잉여현금흐름(FCF)이 부족하다 보니 배당 등 주주환원도 수년째 똑같다.

월마트 등 미국 소비주는 넉넉한 FCF로 배당을 늘려가 월가에선 내년 투자 선호 종목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미국 소비주들은 내년에 본격화할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전쟁' 이전에 싸고 편하게 온라인으로 구매하라며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며 주가 역시 강세다.

증권가 관계자는 "국내 가계와 기업은 경기 침체로 인한 FCF 감소로 연말 소비에 쓸 돈이 없다"며 "미국은 연말까지 강한 소비로 인해 '산타랠리'도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0.3%)를 넘을 정도로 호조다.


특히 월가에선 인공지능(AI) 관련 성장 주식이 고평가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이 시기를 이용해 미국 소비주 비중을 높여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마존의 2024년 예상 주당순이익(EPS)은 6.26달러다.

이는 2023년(2.93달러) 대비 113.7%나 급증하는 수치다.

EPS는 미국 주식에 투자할 때 가장 먼저 직면하는 지표다.

말 그대로 한 주 단위로 따진 회사의 순익이다.


월가는 최근 아마존의 올해 연간 EPS 추정치를 상향 조정했다.

아마존의 자사주 소각이 계속된 데다 블랙프라이데이(블프)로 대표되는 미국 소비 '폭발'로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를 이끄는 아마존의 실적이 증가할 것으로 본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선 최근 오프라인 매장 '줄서기'가 사라지고, 챗봇을 통한 AI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됐다.

앞서 아마존은 AI 쇼핑 도우미 '루퍼스'를 출시해 이 시장의 수혜주로 떠올랐다.

루퍼스는 단순히 제품 추천만 하는 게 아니라 제품 구매 시 고려해야 할 점과 다른 상품과의 차별점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월가에선 아마존이 블프 시즌에 이어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연말 소비 시장으로 인해 FCF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의 올해 예상 FCF는 450억8020만달러로, 2023년(322억1700만달러)보다 39.9%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FCF는 설비와 시스템 투자와 같은 비용(CAPEX)을 빼고 남아 실제 손에 쥔 현금이다.

아마존의 FCF는 전자상거래 수익에서도 나오지만 대부분은 클라우드(AWS) 사업에서 나온다.

AI 사업을 하려면 AI 칩을 지원하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존은 온라인 상거래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세계 1위 회사다.


아마존은 저마진 온라인 상거래와 고마진 클라우드를 동시에 진행하는 특이한 회사다.

당일배송과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느라 아직까지 배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월가에 정통한 증권가 관계자는 "올해 들어 메타와 구글이 배당을 시작한 만큼 내년에 아마존이 사상 첫 배당을 시행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 월마트와도 경쟁 중이나 미국 소비가 뜨거워 아직까진 공존하는 모양새다.

다만 매출 대비 주가 수준을 뜻하는 주가매출비율(PSR)에서 아마존이 3.58배인데 월마트는 1.11배다.

실적 대비 주가는 아마존이 훨씬 비싸다는 뜻이다.

물론 클라우드 사업 성과가 아마존의 높은 PSR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월마트는 배당주로서 아마존 대비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는 평가다.


막상 온라인 쇼핑을 마치려면 마스터카드나 비자의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두 회사는 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온라인 소비 과정에서 국내 카드사는 단순 발행자 역할을 하지만 마스터카드와 비자는 카드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를 제공하고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이는 연간 10% 넘는 미국 카드사의 EPS 성장률로 이어지고 있다.


마스터카드의 올해 예상 EPS는 14.45달러로, 2023년 대비 14.6% 늘어날 전망이다.

비자의 경우 회계연도가 9월에 끝나 이미 2025사업연도가 시작됐다.

비자의 2025년도 예상 EPS는 11.2달러이며 직전 연도 대비 11.9%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학개미들에게 두 카드사는 매일매일 결제할 때 쓰는 친근한 카드회사를 넘어서 배당주로서 자리매김했다.

고물가 시대에는 이를 넘어설 배당성장률이 중요해졌다.

마스터카드와 비자는 모두 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분기 배당금으로 주주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분기 배당을 연간으로 환산하고 최근 5년(2021~2025년 예상) 연평균복합성장률(CAGR)로 따졌을 때 비자의 평균 배당 인상률은 12%에 달한다.


FCF 기준으로 가장 눈에 띄는 회사는 어펌이다.

이 상장사는 '지금 사고 나중에 결제하기(BNLP·Buy Now, Pay Later)' 사업을 본업으로 하고 있다.

BNPL은 신용카드 사용으로 상당 부분 이뤄지지만 카드 발급을 받지 못하는 젊은 세대나 소득이 없는 주부 등에게 절실한 결제 수단이다.

미국 카드사들은 '신파일러'(금융거래 이력 부족자)에게 신용카드 발급을 꺼리기 때문에 어펌과 같은 핀테크 결제 시스템 이용이 늘고 있다.


어펌의 주가는 지난 8월 초 이후 하락세를 끝내고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의 본격적인 하반기 쇼핑 시즌이 도래한 데다 월마트, 아마존, 쇼피파이 등 주요 온라인 상거래 업체들과 제휴를 늘려가고 있다.

특히 2022년 캐나다에 이어 올해는 영국에서도 BNPL 서비스를 시작해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펌의 FCF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 신호다.

2025년도(2024년 6월~2025년 6월) 예상 FCF는 11억5700만달러다.

이는 직전 연도 대비 297.9%나 급증한 수치다.

투자자 입장에선 성장성과 함께 리스크 역시 높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 어펌의 일별 주가 변동성을 보면 10%가 넘는 상승률과 하락률을 곧잘 보인다.

가장 큰 리스크는 경쟁 심화다.

BNPL 시스템을 내재화하려는 월마트와 아마존의 움직임은 당면 과제다.

증권가 관계자는 "지난 4월 어펌 주가가 급락했는데 월마트가 자체 시스템으로 BNPL을 지원하겠다는 뉴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5년도 어펌의 예상 EPS는 -0.2달러다.

2023년도 적자에서 올해 1.7달러 흑자로 돌아섰다가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이런 적자 기업의 경우 고금리도 악재로 작용한다.

금리 상승 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2012년 설립된 '젊은 핀테크' 상장사에는 버거운 거시경제 악재인 셈이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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