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M M-PRINT GFW CITYLIFE LUXMEN 매경이코노미 MBN골드 MBN 매일경제
로그인|회원가입 |시청자 게시판
종목검색
  • 종목검색
  • 통합검색

헤드라인

광고
프로그램 바로가기
프로그램 바로가기 닫기
가나다순 카테고리순
> 뉴스 > 기사
기사목록|||글자크기 
소니 따돌린 뒤에도 "아직 멀었다"…채찍질 하던 위기경영 승부사
기사입력 2020-10-26 20:03
  • 기사
  • 나도 한마디
공유하기 
◆ 이건희 회장 타계 / 前 삼성 출입기자가 본 이건희 ◆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0년 12월 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에서 열린 `2010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가면서 김대영 기자(맨 오른쪽)를 비롯한 취재진 질문에 웃으면서 답하고 있다.

[매경 DB]

기자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쇼)에서다.

그 후 2년 가까이 이 회장 동선을 대부분 취재했다.


삼성 서초 사옥이나 행사장에서 일문일답을 하기도 하고 외국 출장을 가는 인천공항에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본 적도 있었다.

2010년 CES 행사장에서 이 회장은 1년8개월 만에 대외 활동을 재개한 탓인지 기자들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기자는 '지금 한국 사회를 볼 때 가장 던지고 싶은 화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물끄러미 기자를 쳐다보더니 두 눈을 크게 뜨면서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가 가지 않아 배경을 묻자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답했다.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사람들이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삼성이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상황을 묻자 "미래 준비는 택도 없다.

아직 멀었다.

10년 전에는 삼성이 지금에 비해 5분의 1 크기인 구멍가게 같았는데 까딱 잘못하면 또 그렇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전자 부스에 들러 3D TV용 안경을 써보며 TV 사업을 총괄하던 윤부근 사장 등을 두드려주던 장면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이 회장은 같은 해 봄에 경영 복귀 일성으로 위기를 내걸었다.

그는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은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만 보고 가자"라고 했다.

이는 당시 일본 기업들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트리니트론 TV'를 앞세워 아날로그 시대 절대 강자였던 소니가 LCD TV로 바뀌는 시대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해 3위로 전락한 것과 대규모 리콜 사태로 홍역을 치른 도요타 사례를 머릿속에 둔 발언이었으리라. 2011년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도 "취임 초 삼성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해 신경영을 선언하며 낡은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청산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이 회장은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끊임없이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불어넣고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낸 '위기 경영의 승부사'였다.

매출이 늘고 이익이 나더라도 새로운 기술에 의한 위협이나 글로벌 경쟁에 대한 위기감을 표출했다.

조직에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 이 회장의 위기 경영이 삼류 가전제품을 만들던 회사에서 일본 소니, 파나소닉을 누르고 일류 전자회사가 된 가장 큰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회장은 어떤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 대기업 총수들이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지나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느릿느릿하며 어눌한 말투지만 핵심을 짚는 단어를 선별하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했다.

본인 생각이 맞는다고 판단되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3월 당시 정운찬 총리가 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 일부를 협력업체와 공유하자는 '초과이익 공유제' 도입 필요성을 밝혔고 이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참석차 입장하는 이 회장에게 "정 총리의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회장은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시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내가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아마도 이 회장은 기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면 그 실적을 임직원들과 성과급으로 나누면 되고 세금을 잘 내면 국가에 기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 놓고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동반성장에 소홀했다거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무노조 경영의 연장이라는 등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 평가를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 회장은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삼성은 물론이고 정부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했다.

너무 솔직한 발언으로 자칫 본인과 삼성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도 그다지 개의치 않고 돌직구 화법을 구사했다.


이 회장은 통찰력이 뛰어났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핵심을 간파했다.

숲을 보며 큰 그림을 그리면서 때로는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졌다.

예를 들어 '업(業)의 본질'을 묻는 질문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예전에 삼성 고위 임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회장이 신라호텔 사장에게 "호텔업의 본질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 사장은 "고객을 잘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호텔은 부동산업"이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호텔은 특정 위치에 고정된 부동산이며 고객이 객실을 사용하지 않고 공실로 비워두면 매출이 제로가 되는 특성을 간파한 것이다.

오늘 만든 제품을 재고로 남겨서 내일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 출입기자들은 질문을 던졌고, 이 회장은 답변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이 회장이 출입기자들과 우리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훌쩍 떠난 것 같다.


"삼성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열어갈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가."
"과연 한국 사회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김대영 경제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삼성전자

기사목록|||글자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