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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멸시효 사건
기사입력 2019-10-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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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123] 형사 사건에 공소시효가 있다면 민사 사건에는 소멸시효가 있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범죄인 앞에서 수사기관과 법원, 온 국민의 분노를 좌절시키는 게 공소시효 제도다.

화성연쇄살인범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확보되고 지금에서나마 자백까지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법정에 세울 수 없도록 하는 게 공소시효가 맞는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2007년 이전 살인자에게는 15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됐다.

시효가 완성되면 국가의 이름으로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소멸되므로 피해자에게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이 또 있으랴?
비슷한 일이 민사에서는 소멸시효 제도 앞에서 벌어진다.

반드시 받아내야 할 돈이 있고 재판만 걸면 확실히 이를 입증할 만한 서류까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런 권리조차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다가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손에 쥐고 있던 권리를 놓쳐버릴 수 있다.

게다가 돈 받을 채권은 시효기간이 원칙적으로 10년이지만 5년짜리, 3년짜리도 꽤 많다.

다른 사람이 불법행위로 어디를 다치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은 경우에 그 피해를 배상하라고 명령하는 조문이 민법에 있다.

불법행위에 대해 형벌로 정의를 복구하자는 게 형법이라면 돈으로 그 피해를 물어주라고 명하는 게 바로 불법행위 책임을 규정한 민법 제750조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 손해는 금전으로 배상함이 원칙이므로 위법행위를 한 사람은 그 피해자에게 손해를 받은 만큼 돈으로 물어주라는 말이 된다.

고약한 것이 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취득한 손해배상 채권도 소멸시효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짧게는 3년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 피해자 측이 손해가 무엇이고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때부터 3년이다.

보통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때부터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기에 다음 사례를 대입해보자. 난제가 생긴다.


X는 2006년 만 1세가 되던 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X는 사고 직후에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상이 있었지만 뚜렷한 사고 후유증이 발견되지는 않았고 그로부터 6년 정도가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뇌손상으로 인한 장애 진단을 받게 되었다.

교통사고가 발생한 2006년에 X는 아니더라도 그의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 신체적 장애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교통사고를 낸 사람의 신원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2년은 이때로부터 시효기간 3년이 훌쩍 지나간 시점.
그러나 이 사건에 소멸시효 규정을 곧이곧대로 적용해서 너무 늦게 법정에 왔다는 이유로 권리자의 청구를 내치는 게 과연 옳을까? 신체적 장애라고 하는 손해 발생 사실을 2006년에 알게 되어 그때 확인이 된 장애 증상만큼만 보상을 받았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신체적 장애가 그 후 한참이 지나 더 큰 증상으로 발현된 경우에 추가적 보상을 막는 게 옳으냐 하는 문제다.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에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 성장 활동을 하는 때였고 최초 손상된 부위가 뇌나 성장판과 같이 일반적으로 발육, 성장에 따라 호전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며 치매나 인지장애 등과 같이 증상의 발현 양상이나 진단 방법 등으로 보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과연 X 혹은 X의 부모가 교통사고가 발생한 2006년에 "손해를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최근 대법원의 답을 들어보자(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6다1687 판결).
먼저 대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은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을 의미한다.

이때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가 있은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치료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상이 발현되어 그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된 사안이라면, 법원은 피해자가 담당의사의 최종 진단이나 법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해가 현실화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선언을 한다.


그리고 먼저 소개한 사례에 대해 이런 답은 내고 있다(약간 문장을 수정함). "X가 만 15개월 무렵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손상 등을 입은 후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세를 보여 계속 치료를 받던 중 만 6세 때 처음으로 의학적으로 언어장애 등의 장애 진단이 내려지고 제1심 법원에서 신체 감정 결과 치매, 주요 인지장애의 진단이 내려진 사안이다.


치료 경과나 증상의 발현 시기, 정도와 함께 사고 당시 X의 나이, 최초 손상의 부위 및 정도, 최종 진단 경위나 병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사고 직후에 언어장애 등으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X나 그 법정대리인으로서도 그 무렵에 혹시라도 장차 상태가 악화되면 X에게 어떠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을지언정 뇌손상으로 인하여 발생할 장애의 종류나 정도는 물론 장애가 발생할지 여부에 대해서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당시 X가 손해의 발생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한 다음 그에 따라 교통사고가 발생한 날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이 된다고 본 이 사건 제2심 법원의 판단에는 잘못이 있다.

" 교통사고 후유증, 더구나 인지장애와 같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 당시에는 예견하기가 어려운 손해가 시간이 경과한 후에 현실화된 경우에 교통사고 당시에 손해를 알았다고 보아 여기를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잡는 데 신중하라는 말이다.

X나 X의 부모가 가졌던 억울함이 좀 풀렸을 것 같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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