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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산수` 화가 아내의 마지막 예술 열정
기사입력 2020-10-2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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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기창(오른쪽) 박래현 부부.
1943년 서울 남산 기슭에 사는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초가집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인이 찾아왔다.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다니던 우향 박래현(1920~1976)이었다.

그해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여인이 화장하는 모습을 그린 '단장(丹粧)'으로 특선한 박래현은 당시 선전의 추천작가이던 김기창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마침 김기창은 없었고, 그의 부친이 차려준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으면서 목을 빼고 기다렸다.

나이 지긋한 화가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훤칠한 김기창이 나타나자 첫눈에 반했다.

김기창 역시 종아리가 예쁜 천사 같은 여인에게 반했다고 한다.


박래현은 군산 집으로 돌아온 후 편지와 함께 굴비 한 두름을 김기창 집에 보냈다.

청혼도 박래현이 먼저 했다.

남산을 거닐면서 "결혼 후에도 화가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8세 때 장티푸스를 앓은 후 청각장애가 생겼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데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김기창이 망설였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사랑이 너무 깊어져 1946년 남산 민속박물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 약속대로 김기창은 아내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로 그림이 닮아갈까봐 좁은 방에 커튼을 쳐놓고 작업했다.

1947년 동화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국내 최초로 부부전시회도 열었다.

19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랜타운 미술관 초청 부부전까지 우향의 생전에 12회나 부부전을 이어갔다.


동판화 `회상 A`
박래현은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내조에 공을 들였다.

필담의 한계를 느끼자 남편에게 구화(口話)를 가르쳤다.

일부러 부부 싸움을 걸어 자신의 입 모양을 보며 말을 배우게 했다.

남편이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여행 중에 엇갈리면 초콜릿 가게에서 만나기로 정해놓기도 했다.


1남2녀를 낳고도 한국화 대표 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박래현의 창작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한국에 두고 1969년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났다.

뉴욕 프랫 그래픽센터와 봅 블랙번 판화연구소에서 새로운 조형 작업을 실험했다.

맷방석, 부채, 하회탈, 불상, 보리 등 한국적 소재를 기하학적으로 풀어내는 추상판화를 선보였다.

지금 봐도 세련된 조형으로 판화 자체가 한국 작가 최초였다.

식사도 거른 채 동판을 긁고 파서 색을 입히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건강이 악화돼 간암 진단을 받았다.

1976년 서울 백병원에서 투병하던 때 선물받은 난초를 그린 드로잉과 1969~1974년 말년 판화 작품 15점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

9월 11~22일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열리는 '우향 박래현 42주기 판화전'에서다.

1988년 부부전을 열었던 화랑으로 30년 만에 우향의 판화 작품 30점이 걸렸다.

1995년 시몽갤러리 전시 이후 23년 만에 열리는 판화전이기도 하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한국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조형으로 풀어낸 작가로 40~50년을 앞선 작품을 만들었다.

1972년 판화 '빛의 향연'은 미디어아트 같은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미공개작으로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빛을 담은 '빛의 향연'을 비롯해 1971~1972년 제작된 '태고', 맷방석 문양을 변형한 1972년작 '고담' 등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 소개글에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는 운보의 시 '나의 아내 朴崍賢(박래현)'이 실려 있다.

'아! 아! 우향/예술을 위해 가시밭길을 밟고 / 지금은 십자가를 진 당신. / 나와 아이들을 위해 또 한 개의 /십자가를 지고 간 당신. /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그대여!'
운보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바보 산수'를 시도했다.

조선 민화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형한 작풍으로 호방한 필치와 조형 감각, 파격적인 구도를 보여줬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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