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면 계속해서 반려하겠다”…두산 합병철회 사실상 압박한 금감원장

8일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
로보틱스·밥캣 합병 계획에
이복현, 사실상 철회 압박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지배주주 이익만 우선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최근 시장의 반발을 사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합병 사례에 대해 지적했다.


이 원장은 두산측이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 내용이 미흡할 경우 이를 계속 반려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사실상 합볍 계획을 철회하라고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두산은 0.44% 하락한 13만4900원, 두산에너빌리티는 4.09% 오른 1만7540원, 두산밥캣은 0.82% 오른 3만6700원에 마감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두산측에서) 최초 신고서를 제출했을때 부족했던 구조개편 효과, 의사결정 과정, 그로 인한 위험성 등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게재돼 있는지 보겠다는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조금이나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산하에 있는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두산은 밥캣 1주를 로보틱스 0.63주로 교환해 합병하기로 했다.

현재 (주)두산은 두산밥캣 지분을 14%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편이 마무리되면 로보틱스·밥캣이 합병한 법인의 42%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 과정 중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안정적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의 기업가치가 거의 1대1로 동일하게 평가받은 부분에 대해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회사를 합병할 때에는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도록 했는데, 두산로보틱스가 고평가된 점을 이용해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이용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두산측은 지난 6일 신고서 내용을 수정해 다시 제출한 상태다.


이 원장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과 관련해 주요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일부 정치권에서 다소 지나친 규제적 방법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강요하는 제도가 논의되는 마당에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고 봐주지 않는다면 정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엔비디아나 애플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회사 가치와 향후 미래 성장전략을 시장과 공유해 투자자들에게 이익이 귀속된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며 “글로벌 대기업처럼 CEO와 대주주 레벨에서 주주들과 소통을 원할히 해달라”고 말했다.


야당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강행에 대해서는 “모험자본 투자를 막고 펀드 등을 통한 장기간접투자 문화를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기존에 강조했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언급했다.


이 원장은 “그간 주주간 이해상충을 해소하기 위해 개별적·사후적으로 대응해왔으나, 이제는 기업들의 철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원칙 중심(Principle-based)의 근원적 개선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운용사들에게는 “국민재산 지킴이로서 수탁자 책임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며 “유망한 투자 기회를 발굴할 뿐 아니라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경영 감시활동 등을 통해 투자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도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또 최근 운용업계 임직원들의 사익 추구, 약탈적 위법행위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내부통제를 강화해줄 것도 당부했다.


상장지수펀드(ETF) 경쟁 과열에 따른 우려가 커지는 만큼 ETF가 신뢰받는 투자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도 요청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확대되는 해외 부동산펀드 손실과 관련해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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