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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칼럼] 보이지 않는 손의 복수
기사입력 2020-12-0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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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의 이기심 운운하면서 탄생시킨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개념은 다름 아닌 가격(Price)이다.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로 대접받는 이유는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힘이 가격임을 밝힌 데 있다.


푸줏간 주인이 파는 고기나 양조장 주인이 빚은 술 가격이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는지, 고기나 술을 사려는 소비자들 주머니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건 앨프리드 마셜의 말마따나 "가위의 윗날이 종이를 자르는지, 아랫날이 종이를 자르는지를 따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경제학을 배우지 않아도 정답을 안다.

수요와 공급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은 사실 그 본질을 따지고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손'의 왜곡이 일어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다.

최근 논란이 되는 집값·전월세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가격의 왜곡 여부다.

무엇이 왜곡이냐에 대한 경제학적 정의(定義)는 명쾌하다.

그건 '미친 전셋값'이니, '착한 집값'이니 하는 감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다.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느냐 여부에 달렸다.

경제학 교과서를 인용하자면 시장의 효율성은 소비자 후생과 생산자 잉여에 의해 좌우된다.

즉, 전월세란 상품의 경우는 세 들겠다는 사람이 최대한 지불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가격과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의 차이인 소비자 후생을 훼손하는지, 전월세를 놓는 사람이 실제로 받은 금액에서 비용을 빼고 얻는 이득인 생산자 잉여가 훼손되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더 혜택을 본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여론은 그걸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해서 정의(正義)라고들 한다.

설사 정의라 해도 그건 단기에만 해당된다.

장기적으로는 이기심의 실종으로 공급 위축을 부른다.

그 결과 소비자 후생의 손상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불의(不義)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경제학원론식으로 풀어 쓰면 이렇게 된다.


가격이 마음에 안 든다면, 즉 왜곡이라고 주장하려면 소비자 후생과 생산자 잉여의 과학적 측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형성되는 가격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미친 집값'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누구나 거주할 집은 있어야 한다.

자가든 전월세든. 주택보급률 100% 같은 통계는 의미가 없다.

그런 논리를 대려면 더 나은 집을 구하기 위해 2600만명이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한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살고 싶은 지역, 선호 주택이 있다.

단순 무식하게 말하자면 강남 아파트를 원한다.

왜 한적하고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 살지 굳이 복잡한 강남에 살려고 하느냐고 채근한다면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너나 거기 살아라. 시골에." 강남 아줌마식 표현으로는 "부동산은 새 소리 들리는 데가 아니라 차 소리 들리는 데 사는 거야"라고.
그러나 참 고약하게도 이런 데 정치가 개입한다.

전셋값 폭등 원인과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셋값 그 자체와 전쟁을 벌인다.

주택을 많이 보유하는 건 투기이며 전셋값은 무조건 낮추는 게 정의라 생각하는 우군이 많다.

정치가 완력을 행사한다면, 그것도 고상한 명분을 걸면 시녀인 경제는 당할 재간이 없다.

전월세 상승 폭에 상한을 두거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는 것. 그게 가격과의 전쟁, 시장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경제는 시차를 두고 복수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보이는 복수다.

전세난민 신세가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급기야 위로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게 된 것. 전세 집주인이 본인이 이제 그 집에 살겠다고 세입자를 겁박해 이면계약서를 쓰고 전세금을 더 받는 것. 그런 게 시장의 부작용이며 전쟁을 걸어온 상대방에 대한 복수다.

더더욱 아파트는 빵처럼 밤새운다고 만들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래서 복수는 치명적이다.

참으로 우리의 정치는 때늦은 후회를 많이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태까지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지만.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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