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강제집행 나선 대한럭비협회…후원자의 씁쓸한 퇴장에도 후원금 압박 '점입가경'



"앞으로도 대한럭비협회 운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부당징계를 받거나 집요한 공격을 받으며 무고한 피해자로 분명 전락할 것입니다"

대한럭비협회의 부회장이자 후원자이던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7월 협회 부회장직에서 사퇴하며 남긴 말입니다.

럭비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꼽히던 최 회장이 럭비협회와 갈등 끝에 사퇴했지만, 양측의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럭비협회 측이 최근 소송 대리인을 통해 최윤 회장의 회사를 상대로 강제집행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지난 2017년 럭비 대표팀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문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럭비 국가대표팀은 지난 2017년 뉴질랜드로 2주간의 전지훈련을 다녀왔는데, 해당 비용을 최윤 OK금융그룹 회장 측이 부담했습니다.

'아시아 디비전 리그' 참가를 앞두고 국가대표팀의 전력향상을 위한 지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럭비협회는 절차를 문제 삼았습니다.

대표팀이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왔다며 최윤 회장에 대해 직권 남용이라며 해임을 추진했습니다.

최윤 회장은 즉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에 재심의를 신청했고, 대한체육회는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럭비협회는 재차 최 회장을 징계했고, 최 회장은 또 복권하며 정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럭비계의 후원자였던 최윤 회장은 협회의 태도에 신뢰를 잃었고, 후원금 지급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럭비협회는 최 회장을 상대로 이번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지급하기로 했던 후원금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럭비협회의 근시안적 요구가 지속되던 가운데 대표팀의 올림픽 진출을 계기로 일부 대의원들이 나서 화해와 화합을 모색했습니다.

럭비협회가 그 동안의 일에 대해 사과하고 소송을 취하함으로써 최윤 회장의 명예회복을 시켜주면 최 회장도 후원 재개는 물론 더 많은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의원 총회에서 후원금에 대한 소송금액 전부를 내거나 지급보증서를 제출해야만 소송취하를 해주겠다는 럭비협회의 원안이 결정됐습니다.

최윤 회장은 또 한번 럭비계를 위해 대의원총회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다만, 현 협회장에 대한 신뢰가 깨진 만큼 새로운 집행부에 후원금을 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후원금을 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했기에 소송비용보다 더 많은 후원금액을 하나은행에 현금 예치했고, 지급보증서를 럭비협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2021년 1월 2일 이후 하나은행 상공회의소 지점에 청구하면 즉시 지급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현 집행부의 임기가 2021년 1월 1일까지인 점을 고려한 방법이었습니다.

최 회장은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깨진 지금의 현 집행부가 아닌 내년에 새롭게 선출될 집행부가 예치된 후원금을 국가대표팀 전력향상과 럭비발전에 활용해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협회는 최근 소송 대리인을 통해 최 회장 측에 후원금을 달라며 강제집행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내년이면 더 많은 후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근시안적 태도로 현 집행부가 이권 지키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그동안 대한럭비협회는 투명하지 못한 행정과 미흡한 국가대표팀 지원 등으로 럭비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비인기 스포츠의 설움을 겪고 있는 럭비계에게 필요한 든든한 후원자를 앞으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럭비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의 K-럭비를 짊어질 꿈나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럭비협회는 더 이상의 '좌정관천(坐井觀天)'의 태도에서 벗어나 부디 럭비발전과 럭비인들의 화합을 위해 후원자에 대한 예우를 이제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최 회장은 협회와의 갈등에도 럭비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내 럭비 도입 96년만에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자 국가대표팀 초청행사를 개인적으로 마련해 축하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또 지난 6월에는 전국의 럭비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럭비월드컵 공인구 600개와 마스크 등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럭비협회의 '미숙한 행정처리'에 럭비업계 관계자들은 "큰 원군을 잃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용갑 기자 / gap@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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