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상 프로방스 샤토 라 코스트
‘단색화의 거장’ 하종현 개인전
건축 거장 렌조 피아노의 미술관
바다 같은 쪽빛 ‘접합’으로 채워
제대한 BTS RM도 개막일 찾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열린 하종현 개인전. 사진제공=국제갤러리
프랑스 관람객이 하종현의 ‘접합’을 관람하고 있다.

[김슬기]

태양빛이 이글거리는 남프랑스 포도밭에 ‘현대미술의 성지’가 있다.

안도 타다오, 프랭크 게리, 렌조 피아노, 구마 켄고 등 세계 최고 건축가들이 미술관을 짓고 이우환, 루이스 부르주아, 알렉산더 칼더, 제니 홀저 등 거장들의 걸작이 즐비한 샤토 라 코스트(Château La Coste)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의 이 곳을 하종현의 쪽빛 ‘접합’이 물들였다.

마포에 물감을 밀어넣어 물들은 화려한 단색의 향연에 프랑스 관람객들은 감탄을 터뜨렸다.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을 누벼온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거장’이 남프랑스에 상륙한 순간이었다.


하종현 작가(90)가 22일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이자 문화예술 공간인 샤토 라 코스트에서 개인전 ‘Light Into Color’를 개막했다.

샤토 라 코스트와 서울 국제갤러리, 그리고 뉴욕 티나킴갤러리가 협업한 이번 전시는 하종현 작가가 프랑스 남부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대표 연작 ‘접합’ 18점을 포도밭 한가운데 계곡처럼 땅을 파서 만든 랜드마크 렌조 피아노 파빌리온(Renzo Piano Pavilion)에서 펼쳐 보였다.


개막일에 찾은 이 곳은 엑상 프로방스에서도 30여분 구비구비 시골길을 달려야 도착하는 현대미술로 가득한 ‘별세계’였다.

입구부터 이 곳을 거쳐간 거장들의 설치 미술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데이미언 허스트, 션 스컬리의 작품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고, 안도 타다오 아트센터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가 인사를 했다.


샤토 라 코스트의 입구에 세워진 안도 타다오의 아트센터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 [Château La Coste]
이 곳은 외진 곳에 있음에도 201만㎡(61만평)의 공간을 누비며 미술과 와인, 음식을 함께 즐기려는 방문객이 연간 40만명에 달하는 남프랑스의 명소다.

2002년 아일랜드 부동산 거부인 패디 맥킬런(Paddy McKillen)이 와이너리를 매입해 20여년째 예술 성지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실제로 미술 산책로를 따라 1시간이 넘게 거닐어도 끝이 없이 새로운 설치 미술 40여점이 등장하는 놀라운 포토밭이었다.

2017년 이우환이 세운 포도밭 어귀의 작은 예배당 같은 ‘공기의 집’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그의 ‘조응’ 두 점이 숨어 있었고, 언덕 끝에는 밥 딜런의 작품까지 있다.


현재 네 곳의 아트센터는 소피 칼, 랄프 푸치, 장 피고지가 동시에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하종현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개막일 오전부터 아트 바젤을 관람하고 남프랑스로 온 전세계 미술계 인사들이 북적였다.

막 제대를 한 방탄소년단(BTS) RM도 하종현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이번 전시는 하종현의 작업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의 미(美)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 지역이 미술사에서 가지는 위치도 특별하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의 거장들은 프로방스의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남프랑스는 반 고흐, 피카소, 마티스 등이 만년을 보냈고, 특히 폴 세잔이 태어나 평생을 보낸 곳이다.

이 지역을 병풍처럼 둘러싼 생트 빅투아르산을 묘사하며 세잔은 근대 회화를 발명했다.


포도밭에 숨은 것처럼 지어진 렌조 피아노 파빌리온. [Château La Coste]
한국의 화가들에게도 이 지역의 미술은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하종현은 특히 젊은 시절부터 남프랑스를 동경하며 숱하게 여행을 떠났다.

올해 아흔살이 된 노화가는 직접 참석하지 못했지만 장남 하윤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부친께서 남프랑스에 작업을 위해 여행을 떠나실 때마다 엽서에 이 곳의 풍경을 그려 보내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특별한 기억이 있는 곳에서 아버지의 작업을 볼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하종현은 “남프랑스의 빛과 공기는 단순히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각을 일깨우고 관점을 변화시키는 고요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 나는 매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이 장소를 다시 찾았다.

이번 전시는 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회화의 본질과 이 드넓은 자연의 고요한 연속성이 서로 만나게 되는 접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엑상 프로방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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