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구 밍글스 오너 셰프 인터뷰
“한식 더 알리고 싶다” 파라다이스와 협업
파인다이닝 생존은 결국 관광객에 달렸다
미식은 문화의 일부일 뿐, 돈만으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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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인천 아트파라디소에서 협업 진행한 강민구 셰프 / 사진=파라다이스시티 |
올해 국내 유일 미쉐린(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밍글스’ 오너 셰프 강민구가 파라다이스와 손잡았다. 지난 6월 13일 인천 아트파라디소에서 한 차례, 오는 7월 4일엔 파라다이스 부산에서 갈라디너를 또 한 차례 연다.
한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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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글판도 출간한 강민구 셰프의 책 ‘장’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
서울 청담동에 자리한 밍글스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강 셰프는 ‘장(醬)’에 관심이 깊다.
지난해 ‘장: 한국 요리의 영혼(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 영문판을 먼저 출간했고 뉴욕타임스 ‘2024 최고의 쿡북’으로 꼽혔다.
올해 한글판도 출간했다.
이 책은 올해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올해의 쿡북 후보에 오르며 세계 미식계 주목을 받고 있다.
여행플러스는 밍글스에서 강민구 셰프를 직접 만나 요리 너머의 얘기를 들었다.
Q. 파라다이스랑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잠깐 미팅할 수 있냐고 해서 만났다.
오너 셰프로 일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늘 한계 앞에 서야 했다.
규모나 자본이 필요한 일은 혼자선 감당하기 어려웠고 제약이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첫 만남은 작년 초였다.
그 자리에서 ‘장충동 호텔 프로젝트’를 처음 들었다.
1년 가까운 논의 끝에 연구개발(R&D) 센터 주방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호텔도 착공에 들어갔다.
파라다이스와 함께 하게 된 이유는 국내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버텨온 토종 호스피탤리티 그룹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업 문화나 조직 문화도 외부
사람인 내가 들어가서 의견을 많이 낼 수 있는 구조였다.
Q. 파라다이스와 협업을 통해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뭔가.
외식업 안에서도 파인다이닝은 정말 작은 시장이다.
전체 외식업 매출에서 0.01%도 안 되는 아주 좁은 영역이고 그만큼 한정된 손님만 만난다.
밍글스 기준으로 하루에 많이 받아봐야 55명 정도다.
영업일이 한 달에 20일 정도니, 한 달에 1000명 조금 넘는 손님을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행사는 다르다.
하루에도 몇천 명을 상대로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
밍글스는 한식을 새롭게 해석해서 알리는 걸 목표로 한다.
1100명한테만 알리고 끝낼 게 아니다.
행사, 새로운 공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더 많은 사람한테 제대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능성을 이번 협업에서 기대하고 있다.
밍글스에선 한식을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였다.
밍글스 음식을 그대로 옮길 순 없지만 음식을 대하는 철학이나 레스토랑 운영 방식은 그대로 녹여낼 거다.
파인다이닝에서 창의성은 생존이다.
메뉴는 계절마다 바뀌고 손님 반응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밍글스는 프랜차이즈처럼 정해진 메뉴만 계속 내는 식당이 아니다.
늘 새로운 요리를 고민해야 하고, 계절 바뀌면 메뉴도 바꿔야 한다.
지난 11년 동안 팀이랑 그걸 해왔는데 어느 순간 느꼈다.
매장 바깥에서 떨어져서 요리를 차근차근 고민할 시간과 공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R&D 셰프도 이미 뽑아놨는데 연구다운 연구를 하기가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아이도 둘이고, 오너 셰프로서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창의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R&D는 진짜 말처럼 쉽지 않다.
오너 셰프가 R&D에 투자하려면 시간, 돈, 사람 다 필요한데 개인으론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협업이 좋았다.
파라다이스를 위한 R&D 센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밍글스도 같이 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R&D센터는 열린 플랫폼을 지향한다.
외부 셰프들과 공동 연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셰프로서 내 요리 수준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Q. MOU 체결식에서 식재료 연구 얘기를 했는데, 어떤 걸 말하는 건가.
거창하게 옛날 고조리서 찾아보고 그런 건 아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식재료를 다시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재료만 잘 써도 음식 퀄리티는 확 올라간다.
밍글스에서도 늘 그런 고민을 해왔다.
한국에서 매일 먹는 쌀, 우유, 계란 같은 재료부터 제대로 챙기자는 거다.
농가와 잘 협력해서 퀄리티 좋은 한국 식재료만 제대로 확보해도 음식의 레벨이 확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호텔 조식만 해도 그렇다.
많은 계란과 유제품이 들어간다.
똑같은 계란이라도 어느 농가에서, 언제 산란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기본 식재료를 다시 들여다보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넓게 보면 한국은 지금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다.
결국 한국만의 고유한 것, 소량이지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들이 더 중요해질 거다.
식재료도 똑같다.
예전엔 해외 것이 무조건 좋아 보여서 많이 썼지만 이제는 한국 안에서 제대로 찾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밀도 그렇다.
우리 밀로 면도 만들고 빵도 만들 수 있다.
국내 토종 품종의 가축들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밍글스는 11년째 농가와 직접 협력해 재료를 받고 있다.
중간 과정 없이 바로 오는 것만으로도 재료 신선도는 훨씬 좋다.
그 자체로 농가를 직접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결국 농가도 꾸준히 좋은 재료를 만들려면 믿고 거래하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으니 단가 싸움에 밀려서 재료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구조를 바꾸는 데도 우리가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다고 본다.
Q. 한식 파인다이닝이 해외서 인정받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이유를 뭐라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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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셰프 / 사진=파라다이스시티 |
문화라는 건 돈 쏟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스며들어야 한다.
10년 전 정부 주도 한식 세계화 정책같이 정부가 많이 투자하고 뿌렸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음식도 결국 문화의 일부다.
한때 ‘K’만 붙이면 좀 촌스럽다고 했는데 지금은 ‘K’가 붙으면 힙하고 멋진 느낌이다.
한국 음악, 영화, 영상 콘텐츠뿐 아니라 요즘은 예술 쪽까지 주목받는다.
그런 게 다 같이 맞물렸다.
사람들은 집에서 영상으로 문화를 접하지만 실제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때 제일 쉽게 다가가는 게 음식이고 레스토랑이다.
결국 대도시 중심으로 새로운 걸 찾는 문화가 더 활발하다.
그런 도시들에서 한국 셰프들이 잘해준 덕분에 지금 결과가 나온 거라고 본다.
Q. 한식이 세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고민이 뭐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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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셰프의 모습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
밍글스를 연 게 2014년이다.
어느새 1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 몇십 년 걸릴 일을 다 겪은 느낌이다.
그 사이 한국은 파인다이닝이라는 장르를 단숨에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한식이든 파인다이닝이든 그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바로 나였고 밍글스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인데 10년쯤 지나면 사회에 나온다.
큰아이는 이쪽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때쯤 한국 상황이 어떨지 걱정이 많다.
지금 외식업은 인력난이 심각하다.
경제도 계속 버텨주고 성장해야 파인다이닝도 유지된다.
밍글스도 오픈 멤버부터 11년 차, 8년 차, 6년 차, 3년 차가 함께 일한다.
결국 사람들이 독립해서 나가는 게 후배 양성이다.
근데 조리학과도 많이 없어지고 업계 전반적으로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지금 한국 음식에 전 세계가 관심 갖는 시점에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면 안 된다.
진짜 식문화로 제대로 자리 잡아야 10년 뒤에도 파인다이닝이 남아 있고 젊은 친구들이 여기서 일하고 싶어질 거다.
그럼 인력도 더 늘어나고 업계도 건강해질 거다.
Q. 눈여겨보는 레스토랑이 있나.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
좀 다른 케이스로 미국 뉴욕 ‘주옥’을 얘기하고 싶다.
한국에서 영업을 접고 그대로 뉴욕에 다시 문을 열었다.
현지화가 아니라 한국에서 하던 걸 그대로 가져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Q. 미쉐린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히 여행할 가치가 있는 식당’이란 의미다.
밍글스를 목적지로 삼는 외국인도 많다.
처음 3스타 받았을 때 어땠나.
솔직히 올해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래서 더 기뻤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보게 됐다.
레스토랑을 보러 여행을 간다고 하잖나. 그런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점도 꽤 많았다.
그래서 발표 이후로 많이 바꿨다.
가구도 새로 들이고 화장실도 개보수하고 그릇도 교체했다.
재료도 더 좋은 걸로 쓰려고 했고 서비스 방식도 다시 고민했다.
서비스팀 영어 수업도 예전에 했던 걸 다시 시작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
Q. 작년 ‘우리 장’ 영문판을 먼저 내고 최근 한국어판도 출간했다.
영문판을 먼저 낸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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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새X밍글스’ 갈라 디너 주요 메뉴인 장트리오 / 사진=파라다이스시티 |
밍글스는 한식을 재해석해서 전 세계에 알리는 걸 목표로 하는 레스토랑이다.
결국 한식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한국에 직접 와서 레스토랑을 방문해야 가능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그걸 더 실감했다.
손님들이 못 오니까 ‘어떻게 하면 밍글스를 오지 않는 분들과도 한식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영상은 성향에 안 맞아서 못 하겠고 문득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밍글스에 관한 책 말고 한식 자체를 다루는 책이면 좋겠더라. 어차피 할 거면 해외에도 알릴 수 있게 영문판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영문 한식 책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셰프가 직접 쓴 책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사람들이 쓴 책들이 많았다.
‘한국 셰프가 쓰는 한식 책 한번 내보자’ 마음먹었다.
쉽진 않았지만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장’을 주제로 삼았다.
장을 통해 한국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싶었다.
반짝하고 잠깐 팔리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필요할 때 찾아보는, 오래 남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Q. 세계 파인다이닝도 트렌드가 계속 변한다.
요즘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뭔가.
트렌드라기보단 일상처럼 계속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지속 가능성이다.
요즘 셰프들이 그냥 요리 잘하는 기술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피니언 리더로서 식문화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하고 서로 상생하는 구조가 더 중요해졌다.
앞으로 그런 걸 잘 지키는 레스토랑이나 브랜드는 가격이 조금 있어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을 거다.
그 흐름은 계속 강해질 거라고 본다.
Q. 밍글스나 앞으로 운영할 공간에서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실천할 계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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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스 내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
제철 식재료는 기본이다.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원래 안 키우던 재료들도 재배해서 보여줄 수 있다면 식문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아스파라거스만 봐도 그렇다.
내가 어릴 땐 마트에서 겨우 얇은 수입산 아스파라거스 구경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퀄리티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키운다.
서양 식재료라고 해도 한국 농가에서 잘 키워서 쓰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한국 조리법과 식문화와 만나면 새로운 한식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늘 먹던 무, 배추 말고도 선택지가 많아지고 아스파라거스 수출까지 이어진다.
외화도 벌고 식문화도 탄탄해진다.
R&D 센터와 같이 연구해서 그런 채소나 과일 재배 기회를 더 넓혀가는 것도 생각 중이다.
Q. 지금까지 경험한 호텔 레스토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는다면.
호텔에 가면 조식은 꼭 챙긴다.
룸서비스도 시켜보고 전체 식음(F&B) 시스템을 유심히 본다.
홍콩에 한식당 ‘한식구’를 운영하다 보니 자주 가는데 홍콩 로즈우드 호텔이 기억에 남는다.
개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갔는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좋았다.
조식도 마찬가지였다.
더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도 자주 간다.
리차드 에커버스 (Richard Ekkebus)가 이끄는데 식음 전체 퀄리티가 탄탄하다.
Q. 요리에 대한 지금 가치관을 갖게 한 터닝포인트가 있었나.
밍글스를 처음 열었을 땐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식당이고 싶었다.
한식은 한국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접해왔고, 거기에 해외에서 쌓은 경험을 더하면 뭔가 새로울 거라 생각했다.
근데 막상 열어보니 한식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걸 크게 느꼈다.
해외 셰프들이 한국 와서 한국 재료로 요리하는 거와 내 음식이 뭐가 다를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게 한식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했고 재해석했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그때 조희숙 셰프, 정관 스님을 만나면서 한식에 대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게 밍글스 음식의 확실한 터닝포인트였다.
4년 차쯤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색깔을 더 넣기 시작했다.
밍글스만의 색이 분명해진 게 9~10년 차쯤이다.
Q. 경기 침체 속에서도 파인다이닝 인기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한국 파인다이닝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나.
모두 잘 되는 건 아니다.
몇 곳 빼고 전반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파인다이닝은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라 경제가 성장해야 파인다이닝도 성장한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인다이닝이 발전한 이유도 경제력 덕분이다.
그 뒤로 홍콩,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 등이 따라갔다.
관광객이 많아야 가능한 구조다.
한국도 경제 성장은 어느 정도 했지만 지금 멈춘 상태다.
그걸 살릴 방법은 결국 관광객이다.
태국이 그런 사례다.
한국 셰프들 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고 원화 약세로 가격까지 생각하면 더 경쟁력이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음식값이 비싸지도 않은데 퀄리티는 높아서 놀란다.
저성장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한국만의 문화 콘텐츠를 더 만들어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끌어와야 한다.
그래야 파인다이닝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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