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반도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

마의 5%대 벽을 뚫고 지난해 처음 글로벌 점유율 7%에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2030년 한국을 제치고 세계 2위까지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메모리 산업 수성에만 머물러 있는 사이 급속도로 성장 중인 설계와 후공정 등 비메모리 시장에서 동력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최근 펴낸 '2022년 미국 반도체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4%였던 한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9%로 하락했다.

한국의 점유율은 2019년 19%로 떨어진 뒤 2020년에는 20%로 소폭 올랐지만 1년 만에 다시 19%로 내려왔다.


반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8~2020년 전 세계 시장에서 5%를 차지했던 중국 반도체는 2021년 7%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2018년 6%였던 대만은 2021년에는 8%까지 점유율을 늘렸다.


한국은 반도체 설계·검증·지식재산권 부문에서 2%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4%대 점유율을 보이는 등 열세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도 2020년 59%에서 2021년에는 58%로 1%포인트 내려간 상황이다.


중국의 추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반도체 설계' 분야다.

2015년 점유율이 5%에 불과했던 중국이 2020년에는 9%로 끌어올린 것이다.


2030년에는 23%까지 커져 한국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SIA는 그 기간 한국의 반도체 설계는 19%에 머무르며 20%의 벽을 결국 깨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2013년부터 '반도체 굴기'를 본격화했다.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390억위안(약 26조2800억원), 2040억위안(약 38조6300억원) 규모의 1·2차 '국가 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1차 펀드는 반도체 기업 23곳에 투자했고, 2차 펀드는 지난 8월까지 전체 조성금 중 3분의 1 정도인 790억위안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석·박사급 인재들이 세운 팹리스 기업만 2300여 곳에 이른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 수는 중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국내 팹리스업계는 성장이 매우 더딘 상황이다.

국내 주요 팹리스 상장사 17개의 올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5곳은 적자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약 3곳 중 1곳이 적자라는 얘기다.


올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1000억원을 넘긴 곳도 LX세미콘과 제주반도체, 텔레칩스, 어보브반도체, 에이디테크놀로지 등 5곳에 불과했다.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 곳은 LX세미콘이 유일하다.


중국의 반도체 설계는 최근 연구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반도체 설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중국 논문 채택 수가 처음 한국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학회에서 한국은 논문 32건이 채택됐다.

59건을 기록한 중국과 미국(42건)에 이은 3위다.

중국 논문 채택 수가 한국보다 많은 것은 ISSCC 개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설계뿐 아니라 반도체 소재, 패키징 등 기초 산업에서도 튼튼한 체력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SIA 보고서에 따르면 패키징과 시험 분야에서 중국은 전 세계에서 점유율 38%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대만이 19%로 뒤를 이었고 한국은 6% 수준에 머물렀다.

웨이퍼 제조에서도 중국은 21%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2위는 대만으로 19%였고, 한국은 17%로 3위에 그쳤다.

반도체 소재 산업에서는 대만과 중국이 각각 23%, 19%로 1·2위를 겨뤘다.

이 분야에서도 한국은 3위를 기록했다.


SIA는 이 같은 중국의 질주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에 더욱 강력한 지원을 요구했다.

SIA 측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도 25%의 세액공제가 필요하며 설계 전문인력 수급을 위한 이민 지원 정책을 적극 장려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2800억달러(약 370조원) 규모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공포한 데 이어 추가적인 대책을 검토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첫 단계 지원부터 국회에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어렵게 발의된 반도체특별법이 3개월째 국회에서 마냥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왕성호 한국팹리스산업협회 대외협력실장(네메시스 대표)은 "중국은 자국 팹리스 기업 창업 시 투자 비용은 물론 파운드리에 지원금을 줘서 한국 기업의 절반 가격에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며 "외국에서 팹리스 인재를 데려오면 지원금까지 주기 때문에 경쟁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오찬종 기자 / 이새하 기자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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