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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살리려다 내가 죽겠다…탄소제로의 역설, 그린플레이션
기사입력 2021-08-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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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캐나다부터 그리스, 터키, 알제리, 이스라엘까지 세계 곳곳이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홍수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가 전 세계를 휩쓴 자연재해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각국 정부도 탈탄소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탈탄소에 역점을 둔 기술 기반 산업 등이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다.

친환경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와 환경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태양광과 풍력, 수소연료 등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장비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전기차 등을 만드는 데 필수 원자재인 구리와 알루미늄, 리튬 등 금속 가격이 오르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린플레이션이란 녹색을 의미하는 '그린'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녹색경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자재 가격 급등을 의미한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지만 금속 원자재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주요 국가의 기후변화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는 환경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그린플레이션으로 인해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려고 탄소 배출 감축에 나선 각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시스템부터 전기차까지 녹색경제를 추구하면서 구리와 알루미늄, 니켈, 리튬 등 관련 설비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금속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에 해당하는 원자재 수요를 늘리는 모순적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각국 정부가 생산을 억제하면서 원자재 가격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에너지와 자동차 등 다방면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그린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총괄 대표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가 기후 재앙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 그린플레이션이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태양광 패널부터 풍력 터빈 등 관련 장비 생산을 늘려야 하고, 이로 인해 각종 금속 원자재 수요가 늘어난다.

알루미늄은 생산 과정에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태양광 패널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하는 데 알루미늄은 필수적이다.

알루미늄 외에 태양광·풍력발전소에 필요한 구리 소비량은 전통적인 전력시설보다 6배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온실가스 배출을 축소해야 하는 지구촌의 현실적인 과제와 기후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 모순이 발생한 셈이라고 샤르마 대표는 지적했다.


녹색경제를 건설하면서 구리와 알루미늄 등 금속 원자재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금속 원자재를 생산하기 위한 석유 소비도 덩달아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그린플레이션발(發) 원자재 가격 상승은 지속될 전망이다.


아울러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ESG(환경·책임·투명경영)가 칠레와 페루 등 원자재 생산지인 신흥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그린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늘지만 원자재 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환경운동가들의 압력과 각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원자재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고 있다.

샤르마 대표에 따르면 전 세계 구리 공급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칠레와 페루 광산 프로젝트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과거 철광석과 철강 등 원자재 과잉 공급으로 세간의 지탄을 받았던 중국 역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산량을 대폭 축소했다.

미국과 유럽 에너지 업체들은 석유 수요가 상승하고 있지만 유전 탐사나 개발을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다.


다만 물가 상승을 바라고 있는 유럽에는 기회다.


유럽화폐금융포럼(SUERF)에 따르면 녹색 정책은 독일의 인플레이션에 0.4%포인트 상승 여력을 더해준다.

독일의 올해 7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상승했다.

이는 1996년 유럽 통합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전년 같은 달 대비 소비자물가가 3% 이상 오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이후 13년 만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1.9%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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