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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불안한 삶이 마침내 빛날 때까지…‘벌새’
기사입력 2019-08-1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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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영지 선생님의 편지 중”
보편적인 그러나 구체적인, 솔직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하고 싶다면, 작지만 깊게 패인 상처를 치료 없이 치유 받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한 편의 산문시와 같은 ‘벌새’(감독 김보라)다.


영화는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을 담는다.


당시 미국에서는 월드컵이 열렸고 북한 김일성이 사망했으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은희(박지후)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소소한 일탈로 해방감을 느끼던 은희는 어느 날 학원에서 만난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로 인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벌새가 꿀을 찾아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듯 사랑을 갈구하던 소녀와 냉혹하고 폭력적인 세계의 대립을 내밀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느릿느릿 따라가는 영화다.


1초에 무려 90번의 날개 짓을 한다는 ‘벌새’. 작지만 유독 날개 짓이 힘차 벌인지 새인지 모를 존재. 그래서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러나 힘찬 발버둥을 멈추지 않는 중학생 은희와 꼭 어울린다.


공부 잘 하는 오빠와 사고뭉치 언니 아래 늘 부모님의 관심에 목이 마른 은희는 이 외에도 친구, 남자친구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들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서툴지만 부단한 노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는 부모님과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언니, 오빠 때문에 하루하루 답답함은 더 커진다.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한문 선생님 영지로 인해 처음 동경과 애정을 갖게 되고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언뜻 가냘프지만 알고 보면 당차고 순수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길 줄 아는, 자신의 삶이 마침내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격정적으로 매순간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온전한 한 인간. 이 사랑스러운 10대 소녀의 일상을 보며 마치 그 시절 내 이야기처럼 공감하거나 혹은 주변에서 봤던 인물을 떠올리게도 한다.

1990년대 한국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은희가 맺어온 관계도, 무수한 이들의 무엇도 붕괴된 듯하다.

다채로운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 사회의 각종 붕괴 속 아이들의 대처 방식을 통해, 그럼에도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이들을 통해 삶의 근원적 순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누구든 은희처럼 영지 선생님 같은 존재(꼭 사람이 아닐수도)를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을 통해 성숙됐을 테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도망치지 않고, 혹은 즐겁다고 안주하지 않는 가운데 오늘이 쌓여 가고 있다고 감독은 말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자기 것으로 끝나지만, 이걸 공동의 기억으로 만드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는 감독의 영화적 신념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곳곳에서 덤덤한 듯 강렬하게 묻어난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역시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모든 게 그저 궁금한 은희로 분한 박지후와 그런 은희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영지 선생님’ 김새벽의 먹먹한 케미도 주요 관전 포인트. 세상에 지친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분한 정인기, 현실적인 엄마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이승연, 여기에 ‘떠오르는 충무로의 별’ 박수연과 손용범 설혜인이 가세해 매력적인 하모니를 보여준다.


다만 한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까지 걸리는 여정은 상당히 강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본래 3시간30분짜리였지만, 1시간을 줄였다.

그럼에도 굉장히 길다.

서사 없는 긴 서사를 받아들이기까지 관객들은 적잖은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좋은 것도 과하면 질린다.

그 적절 선에 제대로 닿았는지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관객상,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집행위원회 특별상을 비롯해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18회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무려 25관왕을 달성하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는 29일 개봉. 러닝타임 138분. 15세 관람가.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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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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