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M M-PRINT GFW CITYLIFE LUXMEN 매경이코노미 MBN골드 MBN 매일경제
로그인|회원가입 |시청자 게시판
종목검색
  • 종목검색
  • 통합검색

헤드라인

광고
프로그램 바로가기
프로그램 바로가기 닫기
가나다순 카테고리순
광고
> 뉴스 > 기사
기사목록|||글자크기 
[사람과 법 이야기] 역사논쟁, 그리고 한반도
기사입력 2019-05-25 00:08
  • 기사
  • 나도 한마디
공유하기 
학술 논쟁이 형사법정 싸움으로 비화하는 일이 있다.

원래 학문은 비판과 반론, 그에 대한 재반론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튼튼해진다.

그 때문에 학문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단, 그런 자유도 한계는 있겠다.

논쟁 중 상대방에 대한 비판이 어느 선을 넘으면 국가의 형벌권이 개입하는 명예훼손이 되는지가 문제다.

그 명확한 한계를 찾는 일은 필자와 같은 형사법 연구자들의 중요한 공부거리 중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이 쟁점에 대해 한 입장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었다.

1심 유죄, 2심 무죄의 상반된 결론 앞에서 대법원은 2심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죄를 확정 지었다.

대법원은 무죄의 법리를 제시하면서 그 끝부분에 "학술 현장에서의 비판은 가급적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 경쟁 영역에서 다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주관적 비판 의견의 표현 방식을 문제 삼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함부로 끌어들이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필자는 이 대법원의 기본 입장에 찬성하는 편이다.

원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법 중에서도 형법이란 인간의 자유에 개입하는 가장 최후방에 위치해야 하는 법이다.

형법에는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죄를 열거하고 있다.

여기에 미리 명확하게 죄라고 정한 행동만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죄지은 사람의 자유를 빼앗아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형법은 권력자의 자의나 권력 남용으로부터 죄짓지 않은 사람의 자유를 지켜주는 역설적 기능도 아울러 갖는다.

형법의 원칙이 평온한 일상의 자유를 보장함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특히 학문의 자유 영역에서 형벌이 발동되는 일도 자제돼야 할 것이다.


이 판결 이후 필자는 쟁점이 된 학문 영역에서의 후속 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보아하니 이 사건에 관련됐던 학문 분야인 한일 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임나일본부의 허구성, 일본서기의 왜곡 문제, 일제 침략과 친일 문제, 또 한편으로 중국의 동북공정, 동북아 역사 지도 등등 우리 고대사의 재조명 문제들은 이 분야 주류, 비주류 학계 사이에서 지속적인 연구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쟁점들은 비단 고대사 역사학계의 관심사 차원에만 그칠 일은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외교적 현안은 고대사 규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앞으로 이곳이 다시 열강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이 길이 살아나가야 할 이 땅, 대한민국의 강역과 명운이 위태롭게 좌지우지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문외한 일반 국민도 이 분야 역사학계의 논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열린 토론의 장이 필요하겠다.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는 일본 규슈 사가현의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

이 지역에 산재한 아리타, 이마리, 가라쓰 도자기 가마들의 뿌리는 상당수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의 사기장들과 연결돼 있다.

임진왜란은 도공을 납치해 오고자 하는 일본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도자기 전쟁이라는 별칭도 붙어 있다.

일본은 이들 도공들의 빼어난 기술 덕분에 일찍이 이 분야 산업을 일으켜 도자기를 유럽 등지에 수출하면서 부를 쌓았다.

그 지역에서 축적된 부가 19세기 명치유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연구도 있다.

이들 세력이 정한론을 내세우면서 다시 한반도를 침략, 강점하는 일로 이어졌다.


개인적 관심사로 사가현을 찾았다.

임란 때 끌려온 도공 이삼평을 도자기 신으로 모신 도조신사. 전쟁을 도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현해탄 너머 멀리 한반도를 주시하면서 건설했다는 히젠 나고야 성터. 그 언덕에 올라보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백제 무령왕 탄생지라는 가카라시마. 그 탄생과 관련된 백제 개로왕의 동생(또는 아들) 곤지가 일본에서 한 역할과 일본 지배계층과의 연계성. 줄줄이 이어지는 역설적 역사의 연상 속에서 마음의 갈 길을 잃어버렸다.

공부가 부족하다는 두려움과 실존적 억울함으로 방황했다고 고백한다.


[김상준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목록|||글자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