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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눈물 보인 메이…"사랑하는 조국 위해 최선다했다"
기사입력 2019-05-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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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눈물의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철의 여인'을 꿈꾸던 여성 총리는 결국 날개가 꺾여 꿈을 이루지 못했다.

냉혹한 현실 정치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1990년 물러난 뒤 26년 만의 여성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던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취임 2년10개월 만에 사퇴를 밝혔다.


메이 총리는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브렉시트를 질서 있게 인도할 구원자로 여겨졌다.

브렉시트 법안이 불과 3.8%포인트 차로 국민투표를 통과할 만큼 영국 내 찬반 여론이 비등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영국 국민은 준비된 지도자인 메이 총리에게 큰 기대를 했다.


영국 전역을 브렉시트 혼란으로 내몰았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44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에 오른 데 반해 메이 총리는 베테랑 정치인이었다.

메이 총리는 1956년 잉글랜드 남동부 이스트본에서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부친과 토론하며 정치인의 꿈을 가졌다.

대학 시절 친구에게 "나의 꿈은 총리"라고 밝혔을 정도다.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중앙은행(BOE)에서 7년가량(1977~1983년) 근무했다.


이후 세 차례 도전 끝에 1997년 잉글랜드 남동부 버크셔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들어섰다.

이후 보수당 의장과 내무부 장관, 보수당 대표, 재무부 장관을 거쳐 영국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정치인으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60세 나이였다.

영국 헌정 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라는 점도 이목을 끌었다.

수많은 언론은 그를 '제2의 대처'로 불렀다.


하지만 메이 총리의 위기는 취임 1년 만에 시작됐다.

2017년 6월 메이 총리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 의석수를 확대하기 위해 조기총선을 실시했다.

브렉시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총선 결과 보수당 의석수는 오히려 줄어 과반 의석도 지키지 못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을 두고 EU와 본격적으로 협상이 진행된 2017년부터 메이 총리에 대한 비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EU에 끌려다니기만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말 EU와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한 뒤 올해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승인투표 과정에서 메이 총리는 연이어 패배했다.

특히 1차 승인투표에서는 무려 230표 차이로 퇴짜를 맞았다.

영국 정치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역사에 기록됐다.

의회 설득에 실패한 메이 총리는 지난 3월 EU에 브렉시트 시한 연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가까스로 합의 없는 EU 탈퇴인 '노딜' 브렉시트 위기를 넘겼다.


이후 메이 총리는 보수당 내 강경파 대신 제1야당인 노동당과 협상을 벌였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당시 보수당에서는 이러한 메이 총리의 전략에 큰 불만을 가졌다.

영국 '더 선'은 보수당 내 한 관계자의 입을 빌려 "메이 총리가 리더십 위기 경고를 받았다"며 "그에게 시체(Corpse)란 브랜드가 붙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결정타는 앤드리아 레드섬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의 사임이었다.

메이 총리는 결국 24일(현지시간)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시종일관 담담히 말을 이어 가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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