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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정약용 `하피첩`에 담긴 소박한 마음
기사입력 2019-04-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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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30대 초부터 국왕의 의지와 지향에 부응하여 서적들을 교정, 간행하는 일의 중심이 되었고, 외직으로 나가서는 실무에서 합리적인 능력을 뽐냈다.

세상은 그의 편이었고 재능은 일마다 자신을 적임자로 만들었다.


그랬으나, 든든한 배경이었던 임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상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기점이 되었고, 눈부신 재능과 업적은 오히려 정적들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게 한 표식이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유배객이 되었다.


정약용보다 한 살 위였던 부인 홍혜완(1761~1838)은 아주 강단 있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일화에서 그녀가 천주학으로 고아가 된 조카들을 거부하고, 강진에서 온 남편의 시앗과 그 소생을 냉정하게 돌려보낸 사실은 홀로 남아 자신의 가정을 지켜낸 이의 강단을 드러낸 일화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런 그녀가 남편과 혼인할 때 지어 입었던 치마를 남편이 있던 유배지 강진으로 보냈다.

빛바랜 그 치마를 받은 남편 정약용은 무슨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그는 그것을 손수 잘라, 자식들에게 줄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데 썼다.

아들들에게 준 글씨첩이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하피첩(霞피帖)'이고, 딸을 위한 그림은 매화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앉아 있는,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작품이 그것이다.

아들들에게 보낸 '하피첩'에서는 가정을 다스리는 법, 공부, 가문을 위한 후손의 의무를 강조하였고, 딸에게 준 그림과 그림에 붙인 시에는 행복을 기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유배지에 가 있는 본인을 대신할 아들들이었기에 그들이 가문의 명운을 맡아 어른 노릇을 해야 함을 생각했겠고, 아들을 중심으로 여겼던 조선 왕조시대였으니 그런 생각이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시골 강진으로 시집간 딸에게 보낸 그의 살뜰한 마음은 현대의 '딸바보 아빠'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감성'이라고도 하겠다.


그런데 사진처럼 '하피첩'에 사용한 정약용의 글자 가운데에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서체가 있다.

고대 서체인 전서(篆書)의 한 가지지만, 더 옛날의 글씨라고 하는 '고전(古篆)'이다.

쓰기는커녕 아무나 읽지도 못하는 문자이며, 여기에 밝은 인물은 오로지 남인의 큰 스승 허목(1596~1682)뿐이었다.

결국 정약용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글자들을 허목의 고전처럼 보이도록 흉내내어 썼던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는 실학자 정약용답지 않은 일인데 왜 그래야 했을까?

정약용의 시, 정약용의 `매조도` (왼쪽부터)
전서는 권위를 상징하는 서체이기 때문에 정약용이 '하피첩'에서 그 어려운 서체를 동원한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것은 아들들에게 가문을 지탱해 감이 엄중한 일임을 상기시키려는 생각이다.

유배객이었던 그에게 그 사명보다 큰 것이 당시에 무엇이겠는가. 그런 사명이기에 정약용은 자신의 큰 스승이었던 허목의 글씨를 빌려왔던 것이다.


포르르 날아온 새들이 우리 매화 가지에 앉았네
꽃망울이 터지더니 홀연히 찾아왔나 보구나
여기 머물러 살며 즐거운 가정을 꾸리렴
꽃들이 피었으니 열매들도 넉넉하리란다
딸에게 준 이 시에는 가문을 맡은 이의 사명 같은 것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피기 시작한 꽃들은 청춘을 상징하고, 서로 가까이 마주한 두 마리 새는 청춘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유려하고 온화한 시와 그것을 쓴 글씨는 내용과 함께 흐뭇하기까지 하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건네는 따뜻한 음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학자 정약용의 글씨를 담은 '하피첩'이 우리에게 귀중한 유물이지만, 그가 딸에게 준 그림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부모의 마음'에는 아들과 딸이라는 구분이 사라지고 오로지 '인간의 행복'이라는 큰 가치가 있다.

저 작고 소박한 그림과 글씨가 그렇게 큰 가치를 담아낸다니, 예술은 이런 것이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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