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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최은희,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했던 삶…이혼·납치·탈출·망명·투병
기사입력 2018-04-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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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원로배우 최은희가 별세했다.

향년 92세.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운명을 달리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신장 질환 등을 앓으며 오랜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건강을 되찾지 못했다.


지난 1926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배우 김지미·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2012년 12월, '제 2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한 배우 최은희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인 1954년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인 신 감독과 그때부터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 편을 작업하며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러다 신 감독과 이혼 후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으며,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1961년 신상옥 감독 작품 '성춘향'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최은희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 영화제 수상이었다.


이후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 후 10년간 망명생활을 하다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국에 돌아온 후에도 활발을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 등을 기획 및 제작했다.


지난해 11월 신 감독을 기리는 신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 등장한 것이 공식적인 마지막 모습이었다.


유족으로는 장남인 영화감독 신정균을 비롯해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입관은 오는 18일 오후 3시다.

발인은 19일, 장지는 안성천주교 공원묘지로 결정됐다.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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