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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수수께끼 풀러…슈퍼맨, 별이 돼 떠나다
기사입력 2018-03-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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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호킹(1942~2018) ◆
근육이 딱딱해져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치명적 질환인 루게릭병에 걸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열정적인 삶을 산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14일 향년 76세로 타계했다.


호킹 박사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그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킹 박사는 지동설을 발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지 300주년이 되던 1942년 1월 8일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59년 17세의 나이에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 옥스퍼드대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에서 근육이 딱딱해지면서 결국 움직이지 못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진단을 받은 호킹 박사는 "5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호킹 박사의 삶에 대한 애착과 연구에 대한 의지는 더 커졌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의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루게릭병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호킹 박사는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곳에서 당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제인 와일드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1965년 결혼했다.

그는 호킹 박사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뒷바라지하며 세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왔다.

호킹 박사는 1966년 '팽창하는 우주의 성질'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킹 박사는 1970년부터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호킹 박사는 1985년 폐렴으로 기관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으면서 목소리까지 잃었다.

이후 호킹 박사는 가슴에 꽂은 파이프를 통해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호킹 박사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두 개뿐이었지만 컴퓨터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를 이어갔다.

손가락 두 개로 컴퓨터를 조작하면 휠체어에 부착된 음성합성기가 이를 말로 바꿔준다.

이를 통해 강연을 하고 글을 썼으며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호킹 박사는 "약은 나를 치료할 수 없지만 기술은 나를 세상과 교류하게 해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손가락 근육의 힘까지 점점 사라졌다.

결국 호킹 박사는 손가락 대신 뺨에 부착된 센서를 이용해 컴퓨터 화면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세 단어를 조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나는 일찍 죽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시간은 언제나 귀중하다"고 말하며 연구는 물론 수많은 강연을 이어갔다.


호킹 박사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호킹 박사는 1965년 결혼한 뒤 슬하에 2남 1녀를 뒀지만 1990년 이혼하고 1995년 자신을 간호하던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 생활 역시 파국으로 치달았다.

2004년 호킹 박사는 아내에게 상습 폭행을 당하며 우울증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둘은 2006년 '가족사'라는 이유로 합의 이혼했다.

그는 '시간의 역사'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위대한 설계' 등 많은 과학 대중서를 냈다.

특히 1988년 발간한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10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원호섭 기자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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