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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한다더니…대기업 내재화의 그늘 공동 특허·원가 공개 압박, 기술탈취 의혹도
기사입력 2018-03-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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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는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개최하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대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손해액의 10배까지 물게 하는 관련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중소 상생협력, 동반성장위원회 가동 등 사회적 노력으로 대기업 갑질이 상당수 줄어들고 있다는데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럴 거면 국내 대기업 대신 기술 개발해서 해외 기업에 납품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국내 IT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는 한 중소기업 대표의 푸념이다.

기술 개발을 해도 해당 기업 외에 판로를 막거나 아예 산하 자회사를 통해 해당 기술을 가져가버리는 사례도 여전히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이때 대기업에서 제시하는 단어가 ‘내재화’다.

특정 설비, 부품을 산하 자회사로 이관, 일관 생산체제를 갖추겠다는 선언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부품 수급을 할 수 있고 기술 보안도 할 수 있다는 게 대기업 논리. 문제는 한창 함께 개발하거나 개발 당시에는 추가 수주를 할 것처럼 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재화’를 선언, 중소기업을 허탈하게 만드는 사연들이 부지기수다.


▶유형1. 허울뿐인 공동특허
▷알고 보면 해외 납품 원천금지
A업체는 IT 장비 관련 특허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특수 속 신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LG전자에서 마침 신규 라인 개발에 쓸 적합한 기술이라며 미팅을 제안했다.

A업체 사장은 “이미 90% 이상 개발을 끝냈고 기술 특허 신청을 앞두고 있었는데 미팅 말미에 개발 후 특허는 공동으로 나눠야 납품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댔다.

기분은 나빴지만 대규모 자금,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봐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관련 장비가 상당히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해외 업체들의 잇따른 구매 요청이 들어왔다.

그런데 공동 특허 때문에 영업은 발이 묶여버렸다.


그 와중에 납품처 LG그룹 계열사가 경쟁사와 손잡고 A업체 설비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차세대 제품 개발에 나섰다.

A업체는 종전 납품 건까지만의 매출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A업체 사장은 “제품 개발 시 9:1 기여도라 해도 공동 특허라 양 측의 합의가 없으면 외부 영업이 안 되기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B회사는 공동 기술 개발 계획을 접고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B회사 회장 K씨는 “대기업은 보통 복수 납품처를 둔다.

한쪽에서 공동 개발해놓은 기술을 다른 납품회사에 공개하고 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종용한다.

공동 특허 조항 때문에 항의할 수도 없다.

이렇게 대기업이 한 번은 이 회사, 한 번은 저 회사 식으로 물량을 조절하다 보니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구조적으로 이렇게 특정 대기업 생산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종속될 수밖에 없다 보니 독자적으로 연구개발을 해서 국내외 납품처로 다변화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전했다.


▶유형2. 원가 공개 종용
▷대기업 양식에 맞춰 부품 구입비 입력?
C업체는 삼성전자 부품 장비 계열사 세메스로부터 공동 기술 개발 제안을 받았다.

양쪽이 일정 수 연구개발 인력을 배정하고 연구개발비도 두둑이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C업체 대표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설비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C회사는 그런데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뭔가 찜찜한 게 있었다.

세메스 측에서 이전 설비 제작 시 해당 부품 수급을 어떻게 했는지, 관련 부품은 얼마에 사왔는지 등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각 부품별로 세메스 회사 양식에 맞춰 입력하는 식으로 공유해달라는 말에 C회사 대표는 프로젝트를 중간에 결렬시켰다.


그는 “알고 보면 원가를 공개하고 향후 납품 시 보다 협상의 우위에 서려는 저의가 의심됐다.

공동 기술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알고 보면 협력사 납품 원가 분석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앞으로도 이런 제안은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형3. 돌연 내재화 선언
▷설계도면 보여줬더니 “계열사가 할 것”
양대 IT 기업에 납품 중인 D사 대표는 요즘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IT 제품에 들어가는 차세대 장비 개발을 거의 완료했더니 발주처에서 연락이 왔다.

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고 싶다는 요지였다.

발주처에 가서 설계도면이며 향후 기술 개발 방향에 대해 브리핑했다.

발표 당시에는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당장이라도 발주할 듯했다.

그런데 차세대 디스플레이 라인 때 이 회사는 배제됐다.

대신 산하 계열사가 D회사 영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D사 대표는 “기술 탈취가 아니냐”며 항의했으나 상대 회사 측은 “이미 내재화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개발해오던 프로젝트였고 오히려 D회사 기술보다 진일보한 기술이라 발주를 고민했으나 안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차세대 라인 설비가 가동됐는데 애초 D사의 기술 설계도에 적시됐던 설비 방향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D사 대표는 “종전 라인에서 문제점이 보여 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고 이를 상대 회사도 잘 알고 있으면서 막상 항의할 때는 더 나은 기술을 개발했다는 식으로 맞서니 황당했다”며 “눈 밖에 나면 향후 수주 가능성이 낮을 수 있어 추가로 항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들 사례는 모두 최근 2년 새 일어났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수년 전 이미 가동되고 있고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협력사를 상대로 상생협력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이처럼 180도 다르다.


취재에 응한 20여곳 중견·중소 IT 회사에서 특히 원성을 사고 있는 곳으로 삼성전자 계열사 세메스와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PRI)이 꼽힌다.


세메스는 1993년 출범한 반도체·FPD 제조용 설비 제조·판매업체다.

삼성전자가 지분의 91%를 보유하고 있다.

LG전자 PRI는 LG전자LG디스플레이 등 LG 계열사가 필요한 생산 장비를 개발하는 일종의 연구소 조직이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며 그 범위 내에서 투자도 한다.


눈길 끄는 것은 두 곳 모두 최근 성장세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세메스는 2016년 매출액은 1조868억원, 영업이익 749억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매출 1조5327억원, 영업이익 1671억원으로 이미 전년 전체 실적을 넘어섰다.

LG PRI도 조직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 E사 L대표는 “원청업체 담당자는 협력업체 영업이익률이 7% 이상 넘어가면 여러 다른 이유를 들어 납품 가격 인하 협상을 하면서 자사 계열사 영업이익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자회사 성장은 알고 보면 협상 우위에 있으면서 협력사를 쥐어짠 결과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


▶대안은 없나
▷상생 어길 시 손해액 10배 물린다
물론 대기업의 내재화가 적법 절차를 거쳤다면 비판할 수는 없을 수 있다.

또 그들의 논리대로 해외 고급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일정 부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IT 업황 변화 속에 협력사 상당수는 자금력, 기술력 등에서 대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중소기업 기술 탈취, 내재화는 산업 생태계의 암 덩어리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대놓고 항의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면 결국 사회적 합의·제도 측면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당정협의에서 앞으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대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손해액의 10배까지 물게 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시사했다.


김문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부 교수는 “ ‘입증책임(기술침해 혐의 기업은 자사(自社)의 기술이 피해당한 기업의 기술과 무관함을 해명)’을 가해 혐의 기업에 묻는 등 진일보했으나 문제는 정책 실행 의지다.

이미 법적·제도적으로는 ‘당근과 채찍’이 모두 갖춰져 있는 만큼 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8호 (2018.03.07~2018.03.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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